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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사진을 그리다 / 오강석

by 丹野 2010. 12. 5.

 

 

사진을 그리다

 

 

오강석

 

 

 

이태리 토리노 성당이 보존하고 있는 성의는 사진술의 음화Nagative 기법을 이용해 제작되었다. 인체에 유약을 묻혀 천에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이는 사진작가나 화가들이 지금도 사용하는 기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토리노 성의는 일종의 사진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토리노 성의가 진짜라면 예수는 자신에 찍힌 최초의 인간인 셈이다.

토리노 성의의 이미지가 예수의 처형 직후 모습인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최근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토리노 성의는 수차례의 공개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원시인들도 동굴 벽에 밖의 풍경이 거꾸로 비치는 사진 현상을 알고 있었고 토리노 성의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13~14세기의 천문학자들은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pscura라는 사진의 원리를 이용해 별자리를 관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학약품으로 화상을 고착시키는 방법은 불과 1백 삼십 년 전에 프랑스의 다게레오라는 사람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 과정에서 음화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다. 사진술이 발명되기 수백 년 전에 어떻게 사진의 음화 개념을 이용한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는지는 토리노 성화의 또 하나의 미스터리다.

 

내가 예수 초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영국의 BBC가 ‘신의 아들’이란 기획 프로를 제작하면서 맨체스터대의 리처드 니브 교수에게 의뢰하여 복원한 예수의 얼굴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니브 교수는 예루살렘 교외에서 2천년 전에 사망한 유대인 남자의 유골을 발굴하여 이를 근거로 예수의 생전 모습을 복원했다.

 

예수는 신성과 인성의 복합적 존재다. 그러나 사진 속의 남자에게는 아무리 보아도 날카로운 예지도 원수를 사랑할 여유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신의 아들’이 아니었다. BBC는 ‘신의 아들’을 탄생시키기 위해 신을 인간화 한 것이다. 나는 종교를 과학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보여주려고 1년여 동안 신의 아들, 목수 청년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그림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 능력으로는 애초에 무리한 욕심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림을 포기하고 시를 쓰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 첫번째 작업이 「커피로 그린 예수」였다.

 

감옥에는 물감이 없어

커피로 그렸다.

예수 초상

인스턴트커피 봉지

설탕 빼고 프림 빼고

쓴맛으로 그린 그림

대패질도 해보고

나귀도 타 보고

유다를 예수로 그린

미켈란젤로 아이콘, 다빈치코드

한 일 년 벤치마킹하며

신화에 생각만 칠하다가

손이 마음을 기망하다가

목수 청년을 그리려다

신神을 그렸다

──졸시, 「커피로 그린 예수」 전문

 

 

처음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화가들은 사진의 사실적 묘사에 압도된 나머지 ‘회화는 죽었다’고 자조했다. 만 레이 같은 화가는 아예 사진작가로 전업하기도 했다. 화가들의 우려와는 달리 사진은 한동안 예술성을 인정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순수회화에 이르기까지 사진 또는 영상의 원초적 개념인 사진적 표현의 도도한 흐름이 시각예술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시 100년을 맞는 시점에 ‘시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그 논란의 정점에 사진영상의 범람과 젊은 독자들의 활자문화 기피 현상이 있다. 시의 어원인 희랍어 포이에시스Poiesis는 허구의 창작을 의미한다. 사실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진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사실성이 사진적 표현의 한계였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사진은 포토샵이라는 마술로 시적 상징과 메타포어 기능을 용이하게 대체하며 표현 영역을 확산시켜가고 있다. 음성이나 문자 언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전체 커뮤니케이선의 37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영상커뮤니케인션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시적 텍스트를 영상 이미지로 환치시키려는 디지털시, 디카시의 실험적 도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국내의 한 공중파 방송이 제작한 유비쿼터스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프로에서 ‘생각하는 것’만으로 전자기기를 작동하고 영상을 조절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문자 자동번역기는 절대로 다른 언어로 된 시를 자동 번역할 수가 없다. 그러나 머지 않은 미래에 시를 영상으로 보고 영상을 시로 볼 수 있는 자동번역 시스템이 개발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얼굴을 조금씩 다르게 하여 개성을 부여했다 창조의 신비스런 스펙트럼이다. 아날로그 사진의 즉물적 묘사 기능은 인간의 얼굴을 평면에 재현함으로써 식별을 용이하게 하고 이미지를 유형화 하는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포토샵은 스스로 이미지를 창출해 내는 데까지 진화해 버렸다. 포토샵은 영상에 관한한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을 사진과 함께 했다. 국내 최초의 사진 박물관을 건립했고 ‘제3의 언어’란 영상케뮤티케이션 책을 저술 중이다. 나름대로 사진을 잘 안다고 자부해왔다. 그런 내가 한 장의 디지털 사진 때문에 1년 여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우리는 서서히 사진의 포로가 되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른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향한 사진의 거침없는 질주는 시작되었다. 사진은 표현의 한계와 장르의 벽을 넘어 진화하고 있다. 사진이 시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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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석 / 194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으며, 2007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여행기 『다시 가 본 베트남』, 『아! 사하라』와 사진집 『유리판원으로 보는 풍물』, 『20세기의 증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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