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질감과 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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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 김경주의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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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주 일 시 : 2009년 7월 14일 《유심》 문예아카데미에서는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문학인을 초청해서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이는 열린 마당인 ‘문학의 현장’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행사로 지난 7월 14일에, 문단의 젊은 기린아 김경주 시인을 초대한 바 있습니다. 이번 호에 김경주 시인의 강연 내용을 정리해서 게재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젊은 시인의 발랄한 감성을 함께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시에 대해 말한다는 것 전 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잠시 있었지만 그때도 시를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저 역시 학생들에게 시를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제가 시를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를 남에게 가르칠 때도 조심스럽고 많이 헤맸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보다 조금 더 많이 헤매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시적인 질감이 조금씩 드러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얼마 전 저는 안상수 디자이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상수 선생님은 한글이란 문자 체계로 디자인 작업을 하시는 아주 유명한 분인데, 어느 날 전화를 주셔서 이상을 상대로 굿을 벌이는데 시인의 자격으로 참석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본인이 디자인적으로 고민하고 있었을 때 이상의 시집을 읽으면서 언어적 의미보다는 도형적인 측면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선생님은 이상이 금홍이와 처음 차린 ‘69다방’이란 상호를 따와서 자신의 ‘69다방’을 지어놓고, 일 년에 두 번씩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상의 진혼제를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혼제 때 유명한 한 박수무당이 나와 이 진혼제는 이상을 불러내는 것인데, 그는 당대 대단히 잘 놀던 시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잘 놀지 않으면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상을 불러내 잘 데리고 놀다가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백 년 전의 이상 시를 지금도 독특하게 인정하고 재고해보는 이유는 제 생각에는, 그 당대에 그런 시를 쓸 수 있는 ‘시적인 용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적인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시를 쓴다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런 시적인 느낌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 주위 사람들이 추천한 시집 네 권을 들고 군생활을 하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제대할 때까지 그 시들을 제 식대로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당시 짝사랑하던 친구가 있어서 그 시집들은 연애의 감정을 위한 용도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뭔가 연애편지는 알 것 모를 것 같은 감정으로 사람을 울렁거리게 하잖아요? 그런 감정을 느끼며 저는 시적인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매직 아이(Magic eye)’처럼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면 보일 듯 말 듯한 것이 나오는 느낌, 저는 시를 처음 대할 때의 느낌도 이런 것 같아요. 선명함 속에 감춰진 희미함, 그런 느낌들이 제게 시적인 느낌과 시적인 질감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대를 하고 나서 저는 남보다 시를 늦게 시작했고 늦게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어떤 자신감은 충만했습니다. 그것은 시적인 느낌에 대해서는 저는 어느 누구보다도 아주 절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군대 생활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네 권의 시집이 무모하게 자신감을 가지게 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아마도 전공자로서 시를 대했다면 그렇게 시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시라는 게 어떤 형식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시적인 것에 대한 집착과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몸이 가진 에너지에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한 우물을 파지 않는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시인 외에도 저는 연극 작업이나 다양한 여러 작업들을 하고 있고,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해 왔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시를 지키고 쓰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저는 시라는 것은 경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의식화되려는 것들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새로운 시인을 탄생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긴장이 없는 시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시에서 이런 긴장의 지점이 이 시의 화자가 어느 지점에 낙차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아직도 저는 좋은 시와 나쁜 시에 대한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좋고 나쁨의 가치는 도덕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제겐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고자 할 때는 좋은 시를 쓰려고 하는 느낌보다는 잘 쓰려는 느낌이 더 현명하다고 봅니다.
여러분 자신의 시가 탄생했던 그 지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것은 합리적이기보다는 이미지적인 논리에 가깝습니다. 이 이미지적인 논리를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요, 저는 너무나도 소통이 중요하지만 작가란 자신의 고유성을 자신의 언어로서 보여 주는 용기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소통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시인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 공감은 굉장히 멀리 있고 우리는 이것을 끊임없이 쫓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자신이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울릴 수 있으며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의지 자체가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폐적인 언어나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실험성을 트렌드로 내세우는 젊은 시인들의 과장된 포즈도 저한테는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 젊은 시인들은 여러분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작가란 인간을 고려하는 자라고 봅니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언어와 호흡이 언젠가는 읽힐 수 있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잠재적인 독자가 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을 기획하고 그 독자를 고려하는 것이 작가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임, 낯선 곳에 대해 느끼는 강렬함,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어리둥절함, 낯선 곳에서 헤매임 등은 시를 찾아가는 느낌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은 자신의 일상의 속도를 버리지 않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시 쓰기에서 여행과 가장 많은 지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여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진은 일종의 여독과 같습니다. 지진이 일어날 때는 그 공포와 충격 때문에 모든 사람의 얼굴의 반응이 똑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난 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받았던 참혹한 심정과 슬픔은 각자의 표정으로 드러납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여진이 온다고 합니다. 여행이라는 것도 ‘내가 분명히 거기 낯선 곳에 있었지’라는 내 기억만이 온전히 주술을 걸어 확인받을 수 있는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을 언어로 복원하려는 의지들이 모여 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행의 대상지와 머물었던 장소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가 더 중요하죠.
그렇게 봤을 때 영어라는 것은 그 어떤 나라보다 독창적이지는 않겠지만 굉장히 보편적일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travel wave’란 단어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은 남들과는 다른 모국어의 질감을 가지고 살겠다는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시인은 스스로 고유한 언어를 채집하고 발견해야 합니다. 또한 시인들은 새로운 문법과 새로운 의태어, 의성어를 더욱 많이 발견하고 쓸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시를 쓰는 데 있어 저에게 중요한 하나는 시를 쓴다는 것을 잊고 ‘시적인 것’을 찾는 행위이고, 다른 한 가지는 여행을 통해 느껴지는 ‘시적인 질감’ ‘멀미’ ‘시차’ 같은 감정들입니다. 제겐 이런 질감들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들이 제가 평상시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시를 쓰기 위한 예열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사기의 전원을 켜고 바로 복사를 할 수 없듯이 시인도 어느 정도 달궈질 수 있을 때까지 예열의 작업이 요구됩니다. 특히 시는 예열의 과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디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시를 준비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적인 느낌을 느껴야 합니다. 유럽의 많은 시인들이 극작가로 사는 이유는 그들이 시인으로 멸종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연극을 통해서 시적인 질감을 풀고 그 안에 텍스트를 집어넣습니다. 역류하는 방식으로 시를 표현하는 것이죠. 대한민국만큼 시인이 많고 대한민국만큼 시집이 많이 나오는 나라도 없는데, 대한민국만큼 시집을 읽지 않고 대한민국만큼 똑같은 시를 쓰는 작가도 없습니다. 저는 우리 시단이 좀 더 다양해져 이런 기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젊기 때문에 젊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가장 충실하려 합니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도 어른들의 말도 있지만 저는 당분간은 이 말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의 우물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시적인 상태에 충만하기 바라면서 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답 : 첫 번째 시집의 목표는 등단하기 전부터 첫 시집을 묶을 때까지 제 감정을 충실히 반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첫 시집의 발행일자는 바로 제 생일이기도 해서 제겐 남다른 의미도 있었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투병 중인 시기기도 했죠. 그때 저는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던 이야기에 대해 무엇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겠다는 것보다는, 마그마처럼 뭔가 폭파하고 싶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시가 가진 있는 고유한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언어가 스스로 언어이면서 언어이고 싶지 않은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의 멀미들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서 연극과의 결합을 시도했죠. 사실 이것은 너무나 많은 시인이 이미 해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형식과 형식으로 시와 극이 만나는 것이 아닌, 연극이 가지고 있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는 시적인 지점과 시가 가지고 있는 언어라는 형식적 지표가 어떻게 만나는지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제 시를 좋아했던 많은 독자들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두 번째 시집도 그랬고, 세 번째 시집도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보다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계속해서 제가 천착해왔던 시차나 기형, 멀미 같은 것들도 함께 응집되어 나타날 겁니다.
답 : 저만의 여행 노하우가 많습니다. 우선 저는 싸게 여행을 갈 수 있는 정보가 많은 여행 작가 동호회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남들이 안 간 오지를 다녀와서 그곳에 대한 정보를 주고 때론 칼럼을 써주기도 합니다. 여행은 시간과 경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의지의 문제죠.
문 : 무인도 군대 시절 가져갔던 네 권의 시집 제목이 무엇인가요?
답 : 이성복의 첫 시집, 황지우, 김지하 등의 시집이었습니다. 그냥 문학한다는 친구들이 자기 집에 여러 권 있는 것들 중에서 한 권씩 준 것 같아요.(일동 웃음)
문 : 《기담》은 본인의 맘에 드세요? 개인적 느낌으로는 두 번째 시집은 첫 번째 시집보다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거든요.
답 : 느낌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첫 번째 시집에서 독자들이 기대했던 것을 두 번째 시집에서 일부러 배반하고 싶었어요. 결국 나한테 새롭고 불편한 것을 찾았죠. 저는 자기 자신한테 시인은 가장 불편한 언어를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의 언어가 편안한 언어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일상어가 될 뿐이죠. 시는 불편한 언어입니다. 무엇보다 시인은 스스로에게 낯선 언어를 찾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문 : 등단작과 《신춘문예 당선시집》에 실린 시들을 첫 시집에 싣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답 : 등단작은 의도적으로 시집에 넣지 않았습니다. 등단작은 PC방에서 4시간 만에 만들어진 시입니다. 그때 저는 컴퓨터도 없었고 제 방도 없었습니다. PC방은 당시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여러 대학의 대학문학상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만든 시에 대한 회의가 들었고, 잘 만들어진 시의 외형, 그 형식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저한테는 만든 느낌의 시보다는 ‘뜨거운 느낌’의 시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등단 이후에는 고의적으로 대학 시절 썼던 시들을 과감히 버렸습니다. 그 끝물에 있었던 등단작도 그 때문에 시집에 싣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팬티를 입는다〉는 시를 실었는데 형식적 측면에서 성경의 형식을 따라 세로로 구성했습니다. 사실 그 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식 백반 같은 의미에서 수록된 것입니다. 그 시는 어머니에게 제가 시를 쓰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죠.
문 : 첫 번째 시집에서 강정의 시인평을 보면 김경주 시를 불구에 대한 기억 혹은 기형에 대한 기억이라고 했는데요, 선생님은 이런 평에 대해 동의하세요?
답 : 예,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구나 기형에 대한 기억이 맞습니다. 기형은 일그러진 몸, 진화를 이룬 것도 아니고 퇴보를 이룬 것도 아닌 일그러진 그 현상태를 직시하는 느낌입니다. 100%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제겐 불구의 느낌처럼 와 닿습니다.
문 : 가슴에 담고 있는 시인은 누구인가요?
답 : 독일의 극작가이면서 시인인 하이너 밀러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몇 권 번역되어 있습니다.
문 : 김경주 시인은 아웃사이더를 표방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김경주 시인은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지금 인사이더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단의 중심으로 주목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 사실 저는 그렇게 주목받고 사랑받는 것이 불편하고 힘듭니다. 오히려 제 개인적으로 하나도 좋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이 제 시의 긴장점에 대해서 격려하는 차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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