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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감성의 시, 옳은 시, 섬김의 시를 위하여

by 丹野 2010. 5. 27.

 

 

감성의 시, 옳은 시, 섬김의 시를 위하여

 

김석준 시인 

   

■ 김사인
   *1955년 충북 보은생.
   *서울대 국문과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1년 《시와 경제》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 쓰기를 시작했고, 1982년 〈지금 이곳에서의 시―김광규론〉을 발표하며 평론도 시작.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등과 《박상륭 깊이 읽기》 등 편저서 몇 권, 단상집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있으며 신동엽창작기금,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은 바 있음.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 일시 : 2009년 9월 8일
■ 장소 : 유심아카데미 세미나실

 

《유심》 문예아카데미는 ‘문학의 현장’ 두 번째 손님으로 김사인 시인을 초대했다. 신사동 세미나실에서 만난 김사인의 첫인상은 어눌했고, 답답했고, 진지했다. 뭐랄까, 뭐라 구체적으로 형언할 수 없지만, 그 모습이 시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너무 말 잘하는 시인이 많은 시대에, 달변을 내뱉으면서 자기 합리화를 일삼는 시대에, 김사인의 어눌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근조근 자신의 삶―시간―세계를 이야기하면서 시인은 깊은 상념의 세계에 도달하는 듯했다. 김 시인의 이날 강연을 중계한다.

 

 

 

시 쓰기란 길이 잘 나지 않는다

침묵. 막막함. 시 쓰기란 길이 잘 나지 않습니다. 때론 시를 쓴다는 것이 난감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시 쓰기는 그 자체로 마음의 순결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시심은 마음의 순결을 지키고 사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한평생 그 마음을 견지하면서 사는 것도 그렇게 쉽지는 않죠.

 그래서 시 쓰기란 길이 잘 나지 않는 어렵고 고달픈 길입니다. 그렇다면 시 쓰기란 도대체 무엇이고 왜 우리는 글을 써야 하죠? 사실 그 문제는 시인이라면 누구나 다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우리는 진정 왜 시를 쓰고 만약에 시를 쓰는 것이 의미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어떤 시를 써야 하죠?

아마 이 문제는 시인의 운명과 관련되는 물음이자 모든 시인의 필생의 화두일 겁니다. 길 없는 길을 포복하면서 막막함과 참담함 속에서 새로운 길을 터 가는 것이 바로 시인의 운명이죠.

유년기와 청년기에 대한 단상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년기의 삶은 참으로 가난했고, 힘든 시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학교 졸업생 가운데 극소수만이 중학교에 입학을 하는 시골이었습니다. 사실 시에 대해 꿈을 두게 된 무렵도 대전으로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입니다. 내향적인 성격이었고 친구들도 잘 사귀지 못했습니다. 아마 시는 그렇게 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썼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고등학교시절에는 서정주의 〈춘향유문〉 〈사소단장〉 같은 시들, 그리고 강은교의 《허무집》 등에 매료되었습니다. 실로 그들의 시는 저의 영혼을 홀렸습니다.

말하자면 문학 소년기는 그러한 강렬한 감성과 리듬의 세례를 받았고, 그 세계가 문학의 전부라고 여겼습니다. 감성이 충일한 아름다움과 그 형언할 수 없는 허무감 같은 것이 삶―시간―세계의 본래 얼굴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죠. 뭐랄까.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 철학이라고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들어본 철학과 강의들은 기대와는 달리 인생의 근본문제에 답을 주는, 그런 촌스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미숙한 제 눈에는, 분석철학 따위에나 경도되어 지엽말단의 문제에만 천착하는, 그야말로 공허한 학문으로 비쳤습니다. 낙심천만이었고, 결국 국문학 쪽으로 진로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어 저의 현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생에의 전환기

1970년대의 대학은 암울했어요. 대학이라는 공간은 꿈과 희망과 낭만이 숨 쉬는 그런 공간일 수 없었습니다. 특히 긴급조치하의 1976~77년 무렵은 다수의 청년들이 이중고에 시달리던 시대였죠. 아마 그 시절은 우리 모두를 강박증으로 몰고 가 정신분열증에 이르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절은 가난을 돌파해야 한다는 의식과 동료와 이웃들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늘 고민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밥값을 할 수 있는가와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세상이게 할 수 있는가 사이에서의 괴리감으로 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늘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적 기로에 서서 마치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주입된 서정주, 강은교스러운 지향과 대학에서 접하게 된 신동엽, 김수영, 김지하적 지향 사이에서 괴로웠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름다움과 옳음 사이, ‘가슴’의 욕구와 ‘머리’의 책무감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진정한 시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시를 쓸 때,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죠. 왜냐하면 그 문제는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 전체를 문제 삼는 그야말로 근본 사유를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러한 분열 상태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1980년대 초반까지를 보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회의와 암울한 시대 현실 사이에서 그저 무기력한 존재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죠. 더더욱 충청북도 촌사람으로서 도시생활에 대한 염증은 더욱더 심해져 갔죠.

바로 그때 신경림 시인의 《농무》라는 시집으로부터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1956년의 등단작 이후 우리가 아는 신경림다운 대표작들, 〈파장〉 〈농무〉 같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10년이 공백인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 이쯤의 자기갱신을 이루는 데 10년이 걸리는 것이구나’ ‘10년이 지불되고야 이만큼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달라짐의 의미

   
1987년에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를 내기는 했지만, 앞에 말씀드린 ‘아름다움’과 ‘옳음’ 사이의 분열을 극복한 결과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의 시적 고민에 대한 답다운 답이 못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뭔가 시인으로서의 저 자신이 좀 자유로워졌다고 느끼게 된 것은 1990년대 초에 이르러서입니다. 1989, 90년 전후, 개인적으로 적잖이 어려운 고비를 치르면서, 그 과정에서 작고 사소한 사람들 사물들의 소중함 아름다움 눈물겨움 등에 눈이 뜨이면서, 비로소 오랜 부채의식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 농민이라는 관념적 명명이 아니라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유일성과 절대성이 사무쳤고, 또 우리 사람만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협업을 통해 세상의 살림이 굴러간다는 것을 비로소 좀 깨닫게 된 것이죠. 어쩌면 불교식으로 말해서 작은 한소식 비슷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도르노가 말한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식의 강박에서 놓여난 시기도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사회 이 역사에 대한 생각도 다소는 너그러워진 셈입니다.

최근의 시에 대한 생각

모두에서도 이미 말했습니다만, 시 쓰기의 길이란 잘 길이 나지 않은 그야말로 참 어려운 작업입니다. 점점 더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떤 시인은 하루에 몇 편을 쓴다고 하지만, 저의 경우는 늘 시를 쓰면서 쩔쩔맵니다. 그렇지만 요즘 저는 ‘섬기다’라는 동사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뭐랄까. 섬기고 섬겨지는 그 관계, 참 오묘하고 신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를테면 현재 제 마음은 순치되고 부드러워져 섬김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섬김의 대상이지요. 참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남의 말을 듣고 기다려주는 시, 이기는 시가 아니라 지는 시, 외로움과 슬픔 속에 함께 머무는 시, 그런 시를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되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청중과의 대화

― 선생님의 입주과외 시절의 생활은 어땠는지요?

▼ 그땐 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읽을 책도 별도 없고 외롭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입주과외 학생이 착해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습니다.

― 이 시대에 밥값을 하는 시는 가능한가요. 그리고 우리나라 시인들이 진정 밥값을 하는 시를 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문학하는 이들이 밥값을 하는 방식은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문학은 그 자체로 만인이 공유할 수 있는 미적 형식이기 때문에,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 나아가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를 합니다.

― 굳이 문학이라는 형식에 참여니, 민족이니, 민중이나 하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이 타당한가요. 특히 21세기는 세계화를 지향하면서 점점 더 보편적인 추구하는데, 굳이 문학에 그러한 접두사를 붙이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 무엇이라고 간단하게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군요. 굳이 말하자면 불교적 세계관, 즉 천라지망의 그늘 속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상호 연기적으로 걸려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혹은 생명)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잘 누리기, 잘 사랑하기, 잘 이뻐하기와 유사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대승적인 관점에서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지요.

― 신경림 시인의 십 년과 김사인 시인의 십 년을 통해서 시는 진정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 저처럼 재주 없는 시인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허송의 시간일 테고, 무엇인가 새로운 창조적 비전을 제시하는 시인에게는 긍정적 인고의 시간이 되겠지요. 물론 1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누구에게나 시가 그렇게 쉽게 바뀔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10년이라는 시간은 무엇인가 새로운 시를 모색하는 시인의 노력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시간입니다.

― 선생님의 시 세계를 대별하자면 감성의 시, 옳은 시, 섬김의 시의 이행과정을 경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의 초심이라고 할 감성의 시는 현재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요.

▼ 이러한 이행 과정은 저의 시 세계에 있어서 필연적 과정입니다. 섬김의 시는 감성의 시에 대한 확장적인 국면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섬김이란 바로 그 따스한 감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섬김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인데, 그것은 따스한 감성의 시를 대승적으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이룩되는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자신다움에 대하여 긴 호흡으로 머물 수 있는 토대가 바로 감성의 시이고, 따라서 그러한 감성의 토대를 보다 거시적인 차원으로 바라보는 지점이 섬김의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섬김의 미학 안에서 저는 점점 더 존재의 순간순간에 대한 황홀감이나 두려움의 감성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 선생님의 시에는 소외된 것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들이 가득한데, 그것은 어떤 마음의 상태에서 씌어진 시입니까.

▼ 소외란 버려짐입니다. 그 버려짐은 단순히 당사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세상 전부가 책임을 져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 한구석엔 늘 미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죠. 어쩌면 소외된 것에 대한 따스한 시선들은 ‘마음 감’에 대한 반성적 성찰일지도 모릅니다. 편벽된 사고에 대한 도식으로부터의 탈피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모두가 저마다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식이죠. 따라서 소외된 것에 대한 의식은 대승적인 관점에서 ‘마음 감’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 죽음 앞에 서 있다면, 혹은 옛 친구들이 죽음 앞에 서 있다면 그때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 인생은 홑겹이 아닙니다. 제 몫의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안간힘을 다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남이 어쩔 도리 없이 태어났듯이, 우리는 어쩔 도리 없이 그렇게 소멸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요.

객설 혹은 사설


김사인 시인이 고 이성선 시인을 추모하면서 느낀 감정을 술회하는 시 낭독을 끝으로 강연이 종료되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정숙자 시인이 지나가는 말로 참 답답해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이 글을 정리하는 이도 정숙자 시인의 말을 거들며 사실 저도 답답했어요 하고 말했다. 그런데 김사인의 말이 더 걸작이었다. “말하는 저 자신도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하면서 말간 웃음을 웃어 보였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도 많은 다양성이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말을 할까 참고 기다리면서, 답답함도 느껴가면서 우리는 한 세계를 건너는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허여된 삶―시간―세계란 그 자체로 오묘한 그 무엇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때론 답답하게, 때론 경쾌하게 생에의 바다를 건너고 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이러한 느낌의 세계가 바로 시의 존재론적 양태인지도 모른다.

 

 

강연·토론 정리 / 김석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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