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도반道伴
- 차창룡 시인과 나
고성만
1.
차창룡 시인과 나는 3년 선후배지간이다. 여기서 '선후배'란 어휘는, 그 흔한 학연 지연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시에서의 ‘도반’을 설명하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다. 그는 군대 가기 전 대학 4학년, 법학과생이었고, 나는 군대갔다온 대학 4학년 국어교육과생이었다. 어느날 창룡이가 말했다. “형님 저, 시 쓸랍니다.” 평소 조선대학교 나락문학회에서 함께 습작하던 사이라 별달리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그 말이 나에겐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고시는 어떻게 하고야?” 이렇게 반문했을 때 그의 동그란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랬다. 그는 찌들은 가난 속에 공부하던 ‘고시장학생’이었던 것이다.
나와의 대화가 있은 지 채 몇 달도 안 된 1989년 그는 『문학과 사회』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일약 주목 받는 시인이 되었고, 그 보다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던 나는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두어 번 떨어진 다음, 1998년에야 시인이 되었다. 그동안 그는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와 같은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시집들을 내어 우리 시단에 개성적인 목소리로 각인되었다.
그가 2010년 올해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지난 2월 어느 날 통화중에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특유의 저음으로 내게 말했다. 며칠 후 출가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는 순간 내겐 고시 포기한다고 할 때와 비슷하게 서운하고 아쉬웠다. 세어보니 대략 21년만이었다. “왜 꼭 절에 가야하니?”라고 물었을 때 속이나 절이나 같을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막연히 절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긴 그가 펴낸 시집들을 보아도 불교 또는 인도에 관한 시가 많다. 특히 그가 2002년에 낸 시집 『나무 물고기』에는 불교적인 성향의 시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고기는 죽은 후 나무의 몸을 입어
영원히 물고기 되고
나무는 죽은 후 물고기의 몸을 입어
여의주 입에 물고
창자를 꺼내고 허공을 넣으니
물고기는 하늘을 날고
입에 문 여의주 때문에 나무는
날마다 두들겨맞는다
- 차창룡, 「나무 물고기」 부분
누구보다 열심히 문학과 신화를 공부하던 그는 박사학위와 시작활동, 직업 세계 등 여러 가지를 병행하였다. 그러면서 그의 심신은 매우 지쳤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 모두 해탈하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나는 간접적으로 짐작한다. 그가 괴로워했던 것은 세상이었다.
여의주 뱉으라는 스님의 몽둥이는 꼭
새벽 위통처럼 찾아와 세상을 파괴한다
파괴된 세상은 언제나처럼 멀쩡하다
오늘도 이빨 하나가 부러지고 비늘 하나가
떨어져나갔지만
- 차창룡, 「나무 물고기」 부분
세상은 언제나 아프지만 멀쩡하다는 깨달음에 이르러서야 그의 사고는 긴 여정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으리라. 그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비로소 이제야 절에 들어간 것이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2.
시에도 기氣가 있다는 말을 나는 믿고 있다. 기가 센 시는 저절로 응집력을 갖는다. 한방에서는 기가 쇠하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본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기를 중요시해왔다. 기라는 말이 들어간 단어가 매우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기가 차다, 기똥(?)차다, 기가 세다, 기가 살아있다, 기막히다, 등등 기야말로 살아있음의 근거이다. 사람의 기가 왕성할 땐 그 기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해진다. 그래서 기 치료라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기가 뻗어나가는 모양이 자장처럼 형성된다고 한다.
기가 센 시를 보면 저절로 빨려든다. 기가 센 시집을 보면 저절로 손이 간다. 기가 센 시인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것은 기의 논리를 초월한 속성 때문인 듯하다. 행간과 행간을 뛰어넘어 의미가 전달된다.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라는 게 헛묘 한 채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 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만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 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
환해진 젖꽃판 위로 구름족의 아이들 몇이 내려와
어리고 착한 입술을 내밀었고
인적 드문 초겨울 마른 억새밭
한기 속에 아랫도리마저 벗어던진 채
구름족의 아이들을 양팔로 안고
억새밭 공중정원을 걸었다 몇 번의 생이
무심히 바람을 몰고 지나갔고 가벼워라 마른 억새꽃
반짝이는 살비늘이 첫눈처럼 몸속으로 떨어졌다
바람의 혀가 아찔한 허리 아래로 지나
깊은 계곡을 핥으며 억새풀 홀씨를 물어 올린다 몸속에서
바람과 관계할 수 있다니!
- 김선우, 「민둥산」 부분
김선우의 이 시는 접하는 순간 기가 느껴진다. 제목부터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민둥산이야말로 여체의 신비, 생명의 기원을 담는다. 이처럼 기가 센 시를 쓰는 방법 몇 가지를 제시해 보려한다. 첫째,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시작한다. 둘째, 절정의 순간을 노래한다. 셋째, 가장 적절한 어휘와 표현을 쓴다. 넷째, 읽을 만하게 쓴다. 다섯 째, 풍자적으로 쓴다. 이런 말을 쓰는 내 시는 최근 기가 빠져있다. 그래서 참 고민이다.
역사상 승려이자 시인은 한용운, 조오현 등등 여러 분 있었다. 차창룡 시인은 새로운 이력을 추가하였다. 먼저 알려진 시인이 되었다가 나중에 출가하여 승려가 된 것이다. 마침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출가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므로, 그는 이래저래 ‘기가 센’ 시인으로 기록될 듯하다. 창룡이가 출가 전날, 해인사 입구 여관에서 걸어온 전화 목소리가 기억난다. “형님 저, 내일 들어갑니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였는데, 그는 지금쯤 무얼할까.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가 다시 시단으로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 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를 생각하며 시 쓰기의 외로움을 잊으려한다. 여기에 그를 위해 쓴 졸시 한편, 첨부할까 한다.
아주 잘 익은 고요
- 차창룡에게
대밭에는 하루 종일
낫 가는 소리
쌀 씻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
여울물 흘러가는 소리
설설 끓는다
열심히 둥치 굵은 나무를 패는
스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
어허,
겁도 없이
장작 실은 스님의 지게에 앉았다가
난분분 난분분 흩날리는 길을
앞질러 가는
쬐끄만 새 한 마리
저런,
온 산에
불나겠구나!
출처 / 우리詩 카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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