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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사진과 인문학/꽃살문의 꽃이 되다

사찰 꽃살문(2) / 이내옥

by 丹野 2010. 2. 5.

 

                                                                         불갑사- 솟을금강저꽃살문 / p r a h a

 

 

 

 

                               사찰 꽃살문(2)

 

 

 

춘양목으로 만드는 꽃살문

 

 

 

꽃살문의 나무재질은 대부분 춘양목이다.

춘양목은 소나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구궐, 사찰을 비롯하여 유명한 양반 가옥들 모두

이 춘양목을 사용하여 지어졌다. 또 가구재료도 많이 사용되었다.

목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 극럭전이나

부석 무량수전이 모두 춘양목으로 지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재질의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본 국보 제 1호로 불리는 목제반가사유상도

천 년 넘게 잘 보존되어 오고 있는데, 그 숨겨진 이유가 바로,

우리나라 춘양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소나무 수종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재질이 우수하고 값비싼 것이 춘양목이다.

춘양목은 재질이 단단하고 결이 부드러우며 붉은빛이다.

또 오래가도 썩지 않고 뒤틀리지 않는다. 일반 소나무들은 재질이 연하고 무거운 데 비해

춘양목은 재질이 강하면서도 가벼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향기 또한 대단하여

방안을 진동한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목수들은 춘양목을 으뜸으로 치고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춘양목을 구해 집을 짓고 문을 짠다.

 

흔히 소나무하면 굽고 볼품 없는 목재로 생각한다. 그러나 춘양목은 비록 성장이 늦으나

하늘로 곧게 자라오르면 몸체 또한 거대하다. 이런 춘양목의 대부분은

울진, 봉화를 비롯한 경상북도 북부와 태백산맥에 분포되어 있다.

조선시대만 해도 국가적인 사업이나 사찰 건축 등의 특별한 소용 이외에는 채벌이 금지되었지만

근대에 이르러서는 벌목 수송을 위한 열차로가 개설되면서 무분별하게 남벌되었다.

그 열차 수송의 기점이 경상북도 봉화의 춘양여이었다.

그래서 소나무 이름도 춘양목이라 불리게 되었다.

춘양목의 가지가 귀하고 찾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어중이떠중이 모두 춘양목이라 이름 붙여졌고

여기에서 '억지춘양'이라는 말도 비롯되었다고 하니 그 성가를 짐작할 만하다.

 

 

 

꽃살문 제작

 

 

꽃살문을 만들떄에는 백 년에서 삼백 년 가량 된 춘양목을 고른다.

그런데 한 나무에서도 북쪽을 보고 자란 쪽을 택한다. 그것은 이 부분의 나이테가

촘촘하기 때문인데, 나이테가 촘촘할수록 비바람을 맞아도 일정한 형태가 유지되어

무틀과 문살을 만드는 데 적절하다. 이 나이테가 촘촘한 쪽으로 켠 나무를 또 북남풍이 부는 쪽으로

삼 년간 말린다. 기후 변화에 따라 발생하느 신축 작용에 충분히적응시키기 위함이다.

잘 말린 나무는 사 년째 되는 해에 창고에 들여 보관하였다가 꽃살문을 만든다.

 

꽃살문을 만들 떄는 살에 꽃장식을 조각하여 붙이기보다는 살과 한 송이 꽃장식을 일괄로 조각한다.

이러한 각 부분들을 조립해나가면 꽃살문이 하나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마지막으로

문살이 문틀 구멍에서 빠지지 않도록 나무로 만든 쐐기를 박고 대패로 밀어 매끈하게 마감한다.

 

꽃살문을 만드는 작업도 분업으로 이루어진다.

틀과 살을 만드는 작업, 꽃장식 조각과 단청 작업이 그것이다. 살에 장식을 조각하고

이어서 그것을 조립하고 마지막으로 문틀을 끼우고 나면 이제는 단청을 할 차례다.

단청은 원래 꽃살문의 부식을 방지하고 충해를 막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그 화려함과

예술적인 성격 떄문에 장엄의 의미를 지닌다. 단청의 색은 전통적으로 청, 적, 황, 백, 흑 등

오방색五方色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색 가운데 황색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색이며,

이 원색들은 서로 섞여 다양한 중간색을 낸다.

 

꽃살문은 소목장小木匠이 제작한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건물을 지을 떄 꽃살문만 별도로 소목장에게 의뢰하지는 않는다.

전체 건축을 맡은 도편수의 지도를 받기 떄문에 그에 소속된 소목장이 꽃살문을 제작한다.

조선시대 웬만한 절집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도편수에게 맡겨졌다. 의뢰를 받은 도편수는

휘하에 목수와 단청장을 거느리고 현지에 가서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렇기 떄문에 사찰 꽃살문의

지역적 차이를 살피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자료 출처 / (1) 『사찰 꽃살문 』 솔 출판사 

                사진 /관조 스님  글 / 이내옥

 

               (2)『꽃문 』미술문화

               사진 / 관조 스님  글 / 강순형

   

                     불갑사- 솟을모란꽃살문 / p r a h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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