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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포항, 철강과 푸른 물결로 빚은 시 / 손창기

by 丹野 2009. 12. 31.

                                                           p r a h a

 

 

포항, 철강과 푸른 물결로 빚은 시

 

 

 

 

                                                                                                              손창기

 

 

1.

포항은 바다의 도시요, 산업화로 갑자기 변화된 철강 도시다. 그 중심에 포항 제철이 있다. 포항과 포철 30년의 관계는 포항 시민과의 관계만이 아닌, 문학인에게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포철이 포항시에 내는 세금은 520억 원(2007년)으로 포항시 세수입의 20%를 넘는다고 한다. 포항의 인구는 약 51만 명(2008년) 정도로 타지에서 들어온 인원이 약 70%를 차지한다. 포항 인구의 약 23.5%인 12만여 명이 포철과 관련된 철강 일을 하고 있다. 포철이 이룬 성장신화가 삶의 질을 높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그늘에 가려진 서민들의 눈물과 삶의 상처를 세밀하게 살피고 보듬는 일이야말로 작가가 가야할 길이다. 『포항문학』(1981년)을 창간하여 문학의 발판을 마련한 동화작가 손춘익을 비롯한 소설가 이대환, 동화작가 김일광, 그리고 여러 시인들은 여기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포철이라는 공간은 80년대 포항 시단의 핵심 이슈였으며, 90년대 초반까지 명맥을 이어 갔기 때문이다.

 

『포항문학』은 80년대 중반 이후 정립된 노동문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서서히 노동문학의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김만수, 김정구, 김종인, 윤석홍 등이 있다. 현실 참여적 성격이 강한 포항 시단이 터를 마련하는데 성공하였으나,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새로운 시적 성향과 모색을 요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80년대 포철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생채기를 어루만지며 시 속에 담고자 한 『포항문학』의 시인들, 시에서 김만수, 김정구 등과 시조 시인 조주환이 있다.


어둔 하늘 떨어져 내리는/ 온 몸의 비늘 보았네/ 생살 뜯어내는 아픔으로/ 모질게 눈 뜨고 보았네/ 이 땅의 현대사가 비늘로/ 겹겹이 비늘로 떨어져 내리는 하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막막한 가슴으로 올려다 보시던 하늘가로/ 온 몸에 비늘 털며/ 둥둥 떠가네/ 저문 땅 모양없이 살아온 날들도/ 공업입국 번영조국의 앞날 위해/ 모래알처럼 분분히 날려가네


──김만수, 「송정리의 봄 1부」 일부(『포항문학』 6호)

 

 


쏟아지는 잠을 흔들며/ 불 지피는 친구야/ 쇳물 공장 화부가 되어/ 이 땅 선진경제/ 3교대 수출 역군이 되어/ 쇳물을 걸러내는 친구야/ 이 봄날 흉흉한 소문들이/ 귀를 적신다/ 쇳물에 빠져 온 몸으로 경제가 되는 푸른 하늘로/ 안전화 한 켤레 헬멧 한 개/ 고향 언덕 찾아 꽃상여에 얹혀가고/ 높은 어르신네의 헬리콥터가/ 우리들 일당 위로 날개를 턴다// 성긴 잠마다 묻어 내리는/ 버얼건 녹을 털며/ 교대에서 돌아오는 형산강 위로/ 맑은 이슬의 새벽이 온다/ 송내다리 위 저무는 간숫불 아래/ 막소주로 지친 입술을 적시는 친구야/ 우리 이 땅에서의 절망과 사랑이/ 저리도 살별로 자라는구나

 

──김만수, 「송정리의 봄 2부」 일부(『포항문학』 7호)


김만수 시인의 장시 「송정리의 봄 1부」(908행)는 당시 포철의 심장부가 들어선 대송면 송정리를 배경으로 산업화, 공업화의 과정에서 야기되는 철거민들의 희생을 증언하고 있다. ‘대송 철거민’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언어는 독자에게 비장미를 자아내게 한다. 번영 조국을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은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져 흩어질 수밖에 없는, 온몸의 비늘이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시의 유장한 가락은 4음보의 민요 가락을 읊듯, 애절하고도 신명나게 한恨을 풀어내는 창唱을 들려주는 것 같다. 제1부에 이어, 제2부(595행)는 쫓겨나온 이웃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실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 곧 고향이 산업현장이 되어버린 곳에서 빌붙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2세들의 눈물겨운 삶들을 모두고 있다. 친구를 청자로 설정하면서 삶의 생채기뿐만 아니라 폐유 덩어리로 일렁이는 변방 지역의 생태 문제까지 나아간다. 지사적인 강골끼를 지닌 시인은 민중 문학이 놓치기 쉬운 문학적 장치까지 시에 훌륭히 흡수함으로써 90년대 모더니즘 시단을 문제없이 뛰어넘는다.


한 줌도 못되는/ 아내와 아이들의 소망이/ 토막 난 화목이 되어 불 속에 던져지고/ 깨어지고 짓눌려 일그러진/ 세상의 온갖 눈물들을 펄펄 끓이며/ 묵묵히 풀무질하는 너의 곁에서/ 오래 참는 분노는/ 키를 넘는 불꽃이 되어 튀어오르고/ 사방의 어둠을 허물어/ 칼을 빚는 뜨거운 눈빛을 보았어// 자욱한 연기 속에서 번쩍이는/ 두터운 방열복이/ 가난한 아내와 어린 자식들에게/ 얼마나 단단한 방패가 되는지/ 세상의 그 무엇이 되어/ 어둠 속에서 외롭게 이글거리는/ 너의 익은 몸뚱이가/ 얼마나 소중한 희망인지를/ 뜨거운 풀무바람 속에서/ 보고 또 보았어.

 

──김정구, 「화부·1-출선공 김형에게」 일부(시집 『풀무바람 속에서』)


 

낯선 사내에게 열어 보이는/ 무겁게 처진 사내의 낡은 가방 속에는/ 빈 도시락과 땀에 절은 작업복  한 벌/ 당당하게 다리를 지나는 최신형 승용차의 불빛이/ 탐조등처럼 사내를 훑어갈 때/ 낡은 가방 속에서 빛나는 사내의 무기/ 이 세상 강력한/ 우리의 무기가 보였다.

──김정구, 「화부·4-무기」 일부(시집 『풀무바람 속에서』)


김정구 시인은 포철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뜨거운 쇳물과 입 맞추며” 사는 화부火夫를 몸에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지쳐있거나 빛나는 시선을 시 속에서 끌어안는다. 「화부」 연작시(14편)에서 보여주는 고통과 희망은 바로 시인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곁에서 비껴난 시선은 이 땅의 민중들에게 아무런 처방도 되지 못한다는 시인의 말처럼 3교대 하는 노동자의 밑바닥 삶까지 내려가 풀무질로 뜨거운 희망을 불어 넣는다. 빈 도시락과 낡은 가방은 거대 자본의 상징인 승용차와 대비되면서 초라함을 연상시키나, 사내의 가방 속에 든 생존 수단은 곧 강력한 무기가 되고, 결국 우리 모두의 무기로 승화된다.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자본가나 장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불려지지 않았던 때 묻은 이름들”인 현장 노동자에게 있음을 절절히 토로한다.

 

갯벌 갈밭에 와/ 깃을 치는 저 짐승은/ 흡사 어느 전설 속/ 불기둥을 죄 당겨 와/ 박혀 운 이 땅의 상흔傷痕을/ 밑뿌리 째 태우는가// 보게나 저 팔뚝같은/ 불꽃들의 함성 위로/ 그 유월 피멍 낱낱/ 쇳물로 짙게 태워// 부리 끝 불티를 흩으며/ 햇덩이를 떠올린다.// 불길이 터를 잡고/ 번져가는 문턱에 서면/ 몇 점 남은 갈잎은/ 파편처럼 떨고 있고/ 한 겨레 신화神話로 일어선/ 탑이 우뚝 솟는다.

──조주환, 「영일만Ⅱ-포항종합제철浦港綜合製鐵」 전문


시조 시인 조주환은 갯벌 갈밭에 몰려오는 거대 자본을 살아있는 짐승으로 은유하면서 짐승에 의해 불태워지고 뭉개지는 서민의 속내를 길어올린다. 국가 성장의 신화로 우뚝 선 포철과는 대조로 몇 점 갈잎으로 흔들려 변방으로 사라져 가는 토착민의 모습을 고도의 비유로 설정해 독자의 가슴에 파고든다. 시인은 삶의 현장과 밀착하여 뼈에 닿는 아픔을 고도의 비유와 상징으로 리얼하게 녹여낸다. 조주환 시인의 첫 시집 『길목』(1984년)은 시조 형식과 내용에 새로운 자율성을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의 탄탄한 시적 성과는 지역문학에 시조 장르의 주춧돌을 마련하는데, <맥시조문학회>의 결성이 그 예이다. 포항 지역에서 시조의 명맥을 이어가 현재 동인지 27집까지 냈다.

 

서숙희 시조 시인은 진일보하여 제철공장 담벼락으로 스크럼 짜는 줄장미에 생명성을 부여하여 “치솟는 시뻘건 순수 아무도 꺾을 수 없다”(「제철공장의 오월」)고 문명과 자연의 공존을 내세워 2000년대 생명시학을 예고한다. 조현명 시인은 수질 오염으로 더렵혀진 형산강을 “어둠이 흘러내리는 강물 위에 떠 있는 잠수교/ 황어 떼의 뜨거운 입질,/ 그 많던 고기 한 마리도 못 잡고/ 빈손으로 돌아온 날이 있긴 있었네.”(「형산강」)로 묘사하고 있다. 더 이상 강은 우리에게 젖줄이 아니라 주검의 것들로 변해가고 있음을 사라지는 황어를 통해 보여준다.

위에서 김만수, 김정구, 조주환 시인의 ‘포철’은 민중의 생채기와 아픔을 간직한 현실적 삶의 공간이었다면, 서숙희, 조현명 시인은 이제 ‘포철’이 주변 환경에 의식을 갖고 함께 시민과 더불어 살아야 할 공존의 공간으로 지향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다.



2.

1990년대 초반까지 『포항문학』은 철강공단의 노동자 문학을 적극 껴안고 노동 문학을 발굴하는 데 힘쓴다. 이러한 노동문학의 기세는 지역 노동 현장의 문제점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또 포항 시단은 이종암, 김성찬, 권선희, 조현명 등 새로운 시인을 발굴하여 발표 지면의 폭을 넓혀나간다. 1999년 『포항문학』에서 젊은 피를 수용하면서 <푸른시> 동인을 결성한다. 1999년 제1회 푸른시인학교를 열면서 차영호, 김만수, 하재영, 조혜전, 김성찬, 이종암, 권선희, 조현명, 이종암, 손창기, 정차준 시인이 『푸른시』 동인지를 창간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역동성을 발휘한다. 현재까지 저명한 시인을 초청해 제10회 푸른시인학교를 열고, 동인지 『푸른시』 10권째를 발간하고 있다. 동인의 작품 평가를 외부 평론가나 시인에게 맡겨 객관적인 위상을 확립하고 있다.

 

이 시대에 출간한 시집으로 김정구의 『풀무바람 속에서』(1995년), 김만수의 『소리내기』(1900년)와 『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1997년), 권형하의 『바다集』(1997년) 등이 있다. 지역의 정체성을 버릴 수 없는 노동 문학과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고 있는 문단의 과도기 속에서 포항 문단은 현실 인식과 표현 능력을 동시에 담아내기 위해 분골쇄신한다.

2000년에 들어 <푸른시> 동인을 중심으로 포항문학의 회원들이 시집을 봇물처럼 쏟아낸 것도 90년대의 고통을 감내해냈기 때문이다. 조혜전의 『빛들이 지어 놓은 집』(2000년), 이종암의 『물이 살다간 자리』(2000년)와 『저, 쉼표들』(2003년), 하재영의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2001년), 김만수의 『오래 휘어진 기억』(2001년)과 『종이 눈썹』(2003년), 그리고 『산내 통신』(2007년), 차영호의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2003년), 조현명의 『저녁 나무』(2006년), 권선희의 『구룡포로 간다』(2007년), 김정구의 유고시집 『내 붉은 노래』(2005년), 서숙희의 시조시집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2000년) 등이 그 예이다. 이 시기는 현실의 문제, 개인의 실존문제, 생태적인 문제 등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다변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해당 지역 출신 아닌 시인들도 포항 지역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시적 공간으로 승화시켜 쓰는 작품이야말로 지역 문학의 대표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 문학이 그 지역의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 해서 모두 대표성을 띤다면, 스스로 지역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사람살이를 통해 서사를 녹여내고, 세부적인 현실을 담아내어 미학적 완결성을 갖출 때 보편성을 얻을 것이다. 그럼 포항 시단은 지역만이 가지는 지역성과 향토성을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했는지 살펴보자.

영일만을 안고 있는 포항에서 바다는 어떤 공간인가? 순수하고 낭만이 있는 서정적인 공간이기보다는 민중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 역사적 시련이 있는 공간이다. 즉 시인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공간이자 내면에 깃든 비유의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포항의 아름다운 지명 청하淸河, 흥해興海, 송라松蘿, 연일延日, 구룡포九龍浦를 떠올리면 맑고 푸르고 햇살 넘치는 바다의 이미지가 금세 떠오른다. 여기에 애틋한 낭만이 서려 있는 시 한 편을 보자.


유월 하루 버스에 흔들리며/ 동해로 갔다.// 선을 보러가는 길에/ 날리는 머리카락.// 청하淸河라는 마을에 천희千姬./ 뭍에 오른 인어는 아직도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왜.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그것이 인간사人間事.// 지금도 청하라는 마을에는 인어가 살고 있다./ 칠빛 머리카락이 설레는 밤바다에는 피리 소리가 들리곤 했다.// 지금도 유월 바람에 날리는 나의 백발에 천희가 헤엄친다./ 인연의 수심水深 속에 흔들리는 해초海草 잎사귀.

 

──박목월, 「청하淸河」 전문


경주가 고향인 박목월 시인은 오래전 청하淸河에 선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시인에게 이 마을은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장소로 작용한다. 선을 본 여자와 인연은 맺어지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 그 여인은 머리카락이 젖은 인어人魚 이미지로 시인의 마음속에 살고 있다. 오히려 맺어지지 않아서 아름다운 여인의 이미지가 푸른빛 청하라는 공간 속에 “지금도” 살아 숨쉰다. 시인은 백발을 쓰다듬으며 밤바다 소리와 흔들리는 해초 사이로 애틋한 낭만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반면에, 청하면 작은 어촌인 이가리는 포항 시인에게 치열한 삶이 숨쉬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재영 시인의 “죽어간 영혼들의 옷깃 스치는 소리들이/ 철조망에, 전깃줄에 앉아/ 깁지 못한 그물코를 만지작거리는”(「유월, 이가리에서」) 장면은 바다가 주는 풍성한 만선滿船을 보기보다는 을씨년스러운 어촌의 풍경을 소슬히 담고 있다. 김만수 시인은 자칫 핵폐기장으로 생존의 터전인 바다를 잃을 위기에 놓인 이가리를 “우리 모두 헛껍데기로 날아가버릴지 모른다고/ 확성기 소리는/ 문풍지마다 달린 귀를 적시고/ 유자망 그물코마다 날아가 박혔다.”(「겨울 이가리」)고 민중의 목소리로 대변한다. 이종암 시인의 「송도동 산 1번지」는 포철이 들어선 이래 모래가 유실되고 해수욕장이 제 구실을 못하자 상가는 문을 닫고 떠나 “해송처럼 파리하게 껄렁하게” 버려진 아이들이 몇 명만 보일 뿐이다.

 

이종암 시인은 「수평선 다방」에서 ‘강구항’과 ‘다방’의 자리 배치를 통해 내면에 깃든 비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수평선 거기에다/ 몇 평 세를 얻어/ 애인과 다방을 차리자”며 연인과 출렁거리고 싶은 심사를 드러낸다. 흥해읍은 칠포 해수욕장으로 유명세를 타지만, 권형하 시인은 칠포에서 홀로 사는 사벌沙伐 이모를 “물빛마다 눈빛 보태 놓고/ 산빛마다 한숨 보태 놓고/ 섬 하나 섬 하나 만들어/ 대숲 그늘로 앉았네.”(「바다集56-七浦에 가면」)로 그려내면서 개인사가 아닌 바닷가 여인네의 가난과 한恨을 흐르는 세월 속에 고스란히 앉혀 놓는다.

시집 『구룡포로 간다』(2007년)를 출간한 권선희 시인은 시집의 8할이 바다 이야기다. 평자가 지적한 것처럼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노동과 일상이 교차”하는 시적 공간이 ‘구룡포’다. 앞에서 보여준 시적 공간과는 사뭇 출발점이 다르다.


나 오늘 기필코/ 저 슬픈 추억의 페이지로 스밀라네/ 눈 감은 채/ 푸르고 깊은 바다/ 흉어기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 목단꽃 붉은 이불을 덮고/ 왕표연탄 활활 타오르는/ 새벽이 올 때까지/ 은빛다방 김양을 뜨겁게 품을라네/ 작은 창 가득/ 하얗게 성에가 피면/ 웃풍 가장 즐거운 갈피에 맨살 끼우고/ 내가 낚은 커다란 물고기와/ 투둘투둘 비늘 털며/ 긴 밤을 보낼라네

──권선희, 「매월 여인숙」 전문

 

 


이 시가 재미있는 것은 여성 시인이 시적 화자를 남성인 어부로 설정해 놓았다는 사실. 구룡포에 오래 산 시인이 어느새 어부로 합일된 경지에 이른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풍경의 주인이 된 것일까? “슬픈 추억”과 “흉어기”로 그려지는 구룡포는 풍요로운 혜택과 생명의 공간으로는 비춰지지 않는다. 어부는 만선滿船으로 돌아오지 못 했지만,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돌파구로 오래되고 낡은 여인숙에 묵으면서 비늘을 털며, 아니 시름을 털며 긴 밤을 보낼지도 모른다. “~라네”라는 어투를 반복함으로써 “슬픈 추억의 페이지”가 아프고도 정겹게 잘 넘겨진다. 어부는 다시 바다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순환의 섭리를 어길 수 없다. “어판장 한 켠/ 살았다고, 싱싱하게 살아있다고 외치는/ 늙은 여자와/ 죽은 고동이/ 있다.”(「풍경」 전문)에서 생선 파는 늙은 여인네를 고동과 일치시키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 어판장임을 시인은 일깨워준다. 시인은 여기 사는 사람들을 사물, 이를테면 어패류(과메기, 고래, 고동, 가자미, 북어 등)로 동일화하면서 구수한 민중의 입말로 삶의 서사를 시 속에 눅진하게 녹여낸다.



3.

소외되고 기억 저편에 사라지는 것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시인의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이러한 공간을 찾고 시로 형상화하는 것이 바로 민중들의 아프고 메마른 가슴을 덥혀주는 일일 것이다. 흥해읍 초곡리는 현재 폐허가 된 나환자 정착촌으로 천형天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삶의 공간,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공간이었다. 폐허를 찾아 나서는 시인의 발길을 이어졌다. 일찍이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우렀다”고 노래한 서정주의 「문둥이」는 처철한 아픔이 서려 있다. 먼저 차영호 시인의 「초곡리」는 그 곳에 살던 이의 모습을 얌전히 비껴서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비단길앞잡이를 따라 가세요 막무가내로 자란 가시나무들이 문실문실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몽니를 부리더라도 괘념치 마세요 누구든지 동구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얌전히 비껴 섭디다 예전에 예 살던 사람들처럼

──차영호, 「초곡리」 전문


세상의 병든 도시 점령군처럼 밀려와/ 저벅저벅 마을을 짓밟네 우리의 얼룩들/ 다 지우네 바깥 마을 몰래 닦아둔 울음은 /하얗게 마르고 다시 우리 삶은 생잽이로/ 잘려 나가네 구들장에 묻어둔 우리의/ 속내 다 발겨진 초곡리/ 하늘도 볼 수 없는지/ 자꾸 구름을 아래로 내려 보내고

──이종암, 「초곡리·2」 일부


세상을 향해 가시를 세우고 있으나, 사람의 시선이 무서워 피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차영호 시인은 가시나무들에 비유하고 있다. 시인은 낮고 비루한 곳으로 향하는 시선을 가질 때 자연히 이웃의 상처를 돌볼 수 있다. 이종암 시인은 병든 자들은 나환자들이 아니라 세상의 도시임을 보여준다. 세상 사람들은 나환자의 공생을 허락하지 않고 이내들의 삶을 송두리 째 뽑고 더 멀리 격리시키기에 바쁘다. “생명이 지나는 푸른 숲길”(김만수, 「초곡리」)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는 곳에 생명을 되찾아 주는 공간으로 격상시키는 일이 지역 시단의 임무이다. 이는 초곡리라는 죽음의 공간에서 재생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의 일단으로, 바로 포항 시인들의 생명시학이기도 하다.

포항만이 가지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절망이나 혹은 신생을 노래한 작품들은 다른 지역과는 분명히 다른 변별점이 있다. 22년 동안 개최해온 ‘보리누름 문학제’는 대보면 구만리라는 공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내 밥 먹고 구만 바람 쐬지 마라./ 해풍이 심하기로 소문난 구만리/ 토끼 꼬리만 알았지/ 호미등을 누가 아랴/ 장기 등대 뒤로 하고 어장으로 나간다./ 통통배 함께 타고 고기 잡아 20년/ 망자값만 한 해에 기백만 원이 든다며/ 관에서는 불법이라 단속하는/ 삼중망 그물을 간추리는데/ 오만 가지 고기가 다 잡히는 그물// 열기 우럭 이면수 고래치/ 대구 문어 학꽁치까지/ 새벽바람에 출어해야 풀칠이라도 하지/ 얻기 힘든 융자는 몇 푼도 안 되지만/ 그것조차 갚는데 또 뼈빠질 판/ 잡는 족족 관에서 훑어간다는/ 다산의 장기노래가 현실 아닌가// 단속만이 능사 아녀/ 맨날 법타령이나 하지들 말어/ 책상머리 앉아서 펜대나 굴리는 놈들이 뭐 아남/ 최씨 부부는 오늘도 삼중망을 메고 간다

──김종인, 「구만리」 일부


 

위 시는 구만리의 영세 어민들이 거대 자본과 관官에 의해 맥없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관에서 환경적인 문제에 힘쓰고, 저리융자를 통해 최소한 생계유지를 보장해주기는커녕 단속으로 일관하고 있다. 관의 행패는 잡는 족족 관에서 훑어간다는 다산의 노래처럼, “상치잎에 보리밥 싸서/ 파 고추장 섞어 먹세/ 금년엔 넙치마저 구하기 어렵구나/ 잡는 족족 건어 말려 관청에 바친다”(정약용, 「장기 농가」)는 부조리한 사실이 오늘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시인은 자연을 관조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치열한 삶의 투쟁 공간으로, 삶의 애환이 스며있는 공간으로 받아들여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다.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포항 사람들의 삶을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곳이 죽도 시장이다. 재래시장은 대형할인점, 백화점이 들어오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시장의 기능마저 퇴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아직도 가슴 넉넉한 사람들이 있고 형편에 맞춰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이 있다. “동해의 수심이 머문 고무그릇 속엔/ 알통 굵은 해삼 같은 아줌마가”(하재영, 「죽도시장 해삼 장수」) 버티고 있는가 하면, 고무장화를 찢어 몸을 감은 장애인에게 “햇살로 찾은 유물을 한 줌씩/ 되돌려 주고 있”(차영호, 「남빈동 네거리에서 한 사내가」)는 장면은 시인의 시선이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함을 말해 준다.

 

본 글에서 필자는 포항이라는 특정 공간을 노래한 시인들의 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았다. 하지만 제한된 지면 속에 모든걸 언급하기에는 역부족임을 느낀다. 시인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의 공간을 무시하고 어찌 시를 쓸 수 있으며, 현실에서 벗어나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그 동안 포항 시단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람살이의 구체성과 현실에서 빚어진 문제의식을 문학의 기저基底로 삼아 왔다. 산업화로 야기된 80년대 ‘철강 공단’은 민중의 아픔을 달래고 덥혀줘야 하는 현실적 참여 공간이었다면, 현재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시민과 더불어 살아야 할 공존의 공간으로 포항 시단은 인식하고 있다.

 

푸른 물결로 빚은 동해의 바다 시는 동경과 낭만적 시선을 뛰어넘어 민중의 시련과 삶이 담겨있는 공간, 내면의 비유 공간 그리고 삶과 죽음, 소멸과 생성의 공간으로 다양하게 열려있다.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바다를 보는 지역 시인들의 시선이 얼마나 깊게 천착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단순한 내면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시인의 시선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그리고 포항 지역에서 소외된 공간을 찾아 절망과 신생을 함께 노래하면서 현실 문제와 내면의 문제를 병행하려는 시인의 노력은 보편성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가장 지역적인 문학이 보편적인 것으로 발돋움할 때는 미학적으로 얼마나 잘 승화시키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이에 포항 시단이 처절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노래로 풀어낼 때, 포항 지역의 고유성은 전방위로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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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창기 / 1967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하여 경북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푸른시> 동인과 『포항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세상과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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