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MBC 뉴스
사실과 진실의 혼돈을 극복해야
나호열 (한국예총 정책연구위원장)
우리의 의식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냉소가 스며들어 있다.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법은 반민주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의 저항은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만연시켰다. 권력과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결된다는 의식은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 저지른 부정, 부패의 부메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시각에서 시민사회의 확대와 발전은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의 영향력을 키웠고 자연스럽게 여러 부류의 집단을 형성했다. NGO의 한 분파로 부를 수 있는 이런 집단은 정치세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소통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의 허상을 무기삼아 여론을 호도하는 일에 앞장섬으로서 스스로 정치세력화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필자는 과문인지는 몰라도 지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 스스로 좌파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거나 합의하지 않고 그때그때 무문별하게 감성적인 용어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한쪽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한 쪽으로는 민족주의를 설파하고, 서민생활을 체험하지도 할 의사도 없는 사람들이 서민들을 사랑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분열과 반목의 점철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논란의 중심에 언론 특히 방송의 공정성이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지난 10여년간의 급격한 사회변동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영이든, 민영의 형태이든 간에 방송의 중심적 과제는 공정성에 있다. 방송의 위력은 신문의 영향력보다 우위에 있음은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거니와 방송의 독립과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공정성은 방송이 지켜내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의 공영방송은 톨러런스의 미명하에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내는 일보다는 사실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신념에 옷을 입혀 진실로 둔갑시키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이는 민주화를 실현하면서 방송계를 정화, 재편하면서 방송 전반의 기능을 심의, 조정, 관리하는 시스템을 정치논리로 두루뭉실 넘어가 버린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느 기구이든 좌와 우를 안배하는 행태는 자신들의 뜻에 위배될 때 저항으로 파행하는 악습을 탄생시켰고 더 거칠게 말한다면 방송의 위력과 영향력이 얼만큼 크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방송의 공정성을 해치는 장본인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례를 통하여 방송의 편파성을 입증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 간 북한에 대한 미화, 반미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부정뿐만 아니라 정치체제에 대한 호,불호의 표명 등 공정방송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들을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들을 각인해 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왜곡되고 편파적인 체제를 제 자리에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실을 신념화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저지르는 오류 중의 하나이다. 사실의 분석과 비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념화되면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선악의 문제로 비등해 간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삼,사십 대는 그 이전 세대가 겪었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다. 그들의 자유로움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으며, 옳기 때문에 선이라는 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충만한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은 자신들이 기득권층으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있다는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들이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그런 체제를 부정하는 폐쇄적인 의식으로 돌아가는것은 왜곡된 역사교육의 편향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면서도 우리 학계와 일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전인수의 역사 인식이 편향적인 지식인을 만들어낸 근본 원인은 아닐까?
어떤 사실에 대한 반론의 과정으로 제시하는 사례는 또 무수히 재반론에 의해서 반박 당하곤 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글의 서두에서 법의 문제를 거론한 것은 이 때문이다. 즉 룰에 대한 존중과 복종이 우리 사회의 기본 정신이 되어야 한다. 법에 따라서 절차에 따라서 시행하겠다는 의지, 公僕으로서의 사명감이 자리잡지 않는 한 방송의 공정성 문제는 논란만을 거듭할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방송을 장악하여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 방송을 통하여 일반 시민들을 계도하겠다는 전 근대적인 상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회에 방송이 독립성과 자위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를 방송인들이 결단해야 할 때가 왔음을 시청자의 입장에서 부탁드린다.
* 자유기업원 주최 방송 콘덴츠 친시장성 진단과 대안 (2009.10.20)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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