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과 시적 진실 / 나호열
지난 호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한. 일 월드컵은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자부심을 한껏 고취시킨 열광의 한마당이었다. 부정과 부패에 찌들린 현실에 분노하고 주눅들었던 국민들에게 불가능할 것 같았던 꿈을 현실로 뒤바꿔 놓은 젊은 태극전사들은 도전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언제 다시 이런 일치된 감정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월드컵이 끝나고 한달 후 그 영광과 기쁨을 되새기면서 열 네 명의 월드컵 특집 시를 읽는다. 그토록 열망했던 16강의 꿈을 이루고 축구 강국 이태리, 스페인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냈던 과정과 감격이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갈 때쯤이면 8월 호의 월드컵 특집 시들도 역사적 자료로서 훌륭히 그 값을 다하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편집자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특집을 기획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했던 사실적 체험들을 시로 구현할 때에 나타나는 다소 부정적 측면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시는, 아니 어떤 장르라도 창작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창작자 개개인이 체험하는 현실로 주어진 사실이다. 繪 가 장식의 목적과 기억의 저장이라는 측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상기하여 본다면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포착하여 드러내는 체험은 창작물의 기본 뼈대가 되는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시는 회화나 영상매체가 가지는 시각적 효과를 따라갈 수 없으며, 음악이 가지는 리듬감과 드라마틱한 음율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면서 시는 음악과 미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그것들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부단히 이어가고 있다. 시의 이러한 일반적인 경향은 모든 예술이 이미지 image를 지향한다는 전제로 말미암아 그 의의를 잃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은 보고, 듣고, 감촉한 것들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 감미롭다, 딱딱하다 등의 관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1924년 쉬클로프스키가 '낱말의 회복' 이라는 선언문을 통해서 주장한 '낯설게 하기'는 일상세계의 자동화되고, 인과율의 법칙에 따르며 재료화된 현실을 낯설게 만들고, 인과율을 벗어난 목적론의 입장에서 현상을 해석하며 따라서 시를 비롯한 예술은 주어진 재료를 기법적으로 다루고 이야기를 구성해 낸다는 것이다. 거칠게 이야기한다면 시는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나 모방이 아니라 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인식하고자 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에서 논의되는 진실이란 현실을 새롭게 구성하여 드러내는 바, 허구fiction인 것이며 시의 풍미는 허구화된 관념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자극과 그 배설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 사용되는 각종의 비유법은 창작자와 독자들의 상상력의 간격을 넓혀 놓기도 하고 일치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시를 읽고 감명을 받는다. 그 감명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논리정연한 형식일 수도 있고,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일 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감동이나 전율은 상상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가 썼다는 책을 펼쳐 들었다
쏴아 사이다를 부을 때
차오르는 기포같은 것이
가슴을 치는가 했더니 흰 파도가 달려와
와르르 쓸어가 버린다
잃어버린 것들의 애상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펼쳐지는 바다
바다 위에 내가 다시 서 있다
전은미, 「바다가 가고 싶을 때」전문
'그가 썼다는 책' 은 '바다'이다. 화자와 그가 어떤 사이인지 어떤 인과율에 얽매여 있는 지 구체적인 정황은 나타나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화자는 바다 앞에 서 있을 뿐이다- 마지막 연의 '바다 위에 내가 다시 서 있다' 라는 진술은 '바다 앞에 내가 다시 서 있다' 라고 표현될 때 더욱 비장감이 살아나리라고 본다 - 그는 현실적으로 부재하지만 화자는 바다를 통해서 그를 본다. 그러나 바다는 그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화자는 슬프다 외롭다. 그와 책과 바다는 외연적인 측면에서는 유사성이 없지만, 내포에서는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드러나지 않는 내포를 찾는 행위, 곧 추리와 상상력을 통해서 이 시를 감상할 때 시의 허구적 기능이 더욱 강화되는 기쁨을 마주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서병성의 「별내마을」은 별내마을에 대한 묘사에 있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마을의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끌어낸다.
'길은 산을 돌아 숨는다', '햇살이 모이고/ 싹들이 돋아나는/산기슭 뫼들은/마을을 내려다 본다', '별들이/총총한 밤하늘/은하의 꿈이 깊어만 간다'
간략하게 뽑아 본 몇 구절에서 드러나듯이 별내마을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햇살이나 달빛, 별빛들은 사람들의 지붕 위에도, 무덤가에도 공평하게 내리는 자연의 선물이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잊는다. 도시는 죽은 자를 망각하고 배제한다. 그러나 이우주는 그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넉넉한 힘을 가지고 있다. 깊어가는 은하의 꿈은 무엇인가? 이 시의 화자는 그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독자들의 감성을 넓혀주고 깊게 하여주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 보자. 시적 진실이 전적으로 추리를 통한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체험을 일상적 관찰을 통해서도 드러날 수 있다는 典據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텔레비젼을 보면서 아내가 말했다
텔레비젼에서는 남태평양 뉴기니아 원주민이 물 속에서
물고기 사냥을 하고 있었다
"여보 물고기들이 사람을 웬수로 알겠어요"
"뭐는 않그러겠어?"
그 말을 하고 나니 웬지 씁쓸했다.
사람이 제일 더럽고 무섭다는 말
나는 안다.
구흥서의 「텔레비젼을 보면서」전문
구흥서의 시집 『아침 앞에 서서 팔을 벌린 이유』를 읽으면 풍부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유머와 해학과 풍자도 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시에는 형식미가 배제되어 있다. 그는 시를 낯설게 하지 않는다. 이미 그의 눈에 세상은 덧없고, 이상하며, 싱겁다. 그런데도 그 속에서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온몸을 부비며 사는 것, 그 자체가 낯 선 것이다. 그는 그 낯 섬을 부정하지 않는다. 위의 시에서 '사람이 제일 더럽고 무섭다는 말/ 나는 안다'는 선언은 시인의 독단이다. 왜냐하면 선언의 반대편에서 '인간은 아름답다' 를 외치는 일군의 휴머니스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내포한다. 그리고 사람이 제일 더럽고 무섭다는 말을 아는 존재인 나 또한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강한 부정은 반성과 어여쁨을 수반한다. 구흥서의 시집 전반을 꿰뚫고 있는 것은 온 몸으로 세월을 견뎌내며 건져 올린 해학이다.
처음부터 그의 자리가 아니었다
정원수 아래
키 작은 꽃들 속에
어우러진 그를 내몰아내기 위해
약을 뿌리고
오늘은 기어코 호미질을 했다
단지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춰지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명성이 없기 때문에
그가 많은 돈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양심이 얼마나 맑은지
허리 곤두세우며 살아왔는지
나 알려고도 하지 않고
성큼 뿌리를 흔들었다.
그가 지닌 무수히 많은 밤의 아픔도
쓰라린 상처도 드러내지 않고
한마디 변명없이
사라질 줄 안다
목이 메였다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진다
박정순,「잡초를 뽑으며」전문
『牛耳詩』8월 호에 실린 위의 시는 치밀한 관찰로 대상을 파악하고 대상의 내포와 외연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은유하므로서 감동을 자아낸다. 앞의 구흥서의 시가 직설적인 어법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드러내었다면 이 시는 잡초의 생명력과 삶의 의지, 대다수 서민들의 고달픈 삶과, 무수한 감정을 솎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의 원리를 대입하므로서 전통적인 은유의 기법을 보여준다. '목이 메었다/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진다' 의 결구는 '나는 안다'로 끝나는 구흥서의 감흥과는 또 다른 반성의 영역을 보여주지 않는가?
시는 사실과 몽상의 양극을 부단히 오간다. 시인은 현실 속에서 한여름 뭉게구름처럼 끝없는 삶의 물음표를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오늘도 독자들은 구름을 만지고 바람을 읽는다. 손 끝에 남는 시인의 향기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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