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을 만져보다
신채린
어둠 속을 헤매던 애벌레 한 마리 기어이 밟히고 만다
고 작은 몸뚱어리가 터지며 물컹물컹한 슬픔들을 한없이 토해
낸다. 슬픔이 남김없이 다 빠져 나가자 희고 부드러운
얇은 껍질만 남는다.
한 조그만 生이 담겼던 얇은 껍질. 사람을 담고 있는 것도
얇고 부드러운 껍질이리. 슬픔이 많은 사람을 담고 있느라
한껏 늘어났을 내 껍질이여, 군데 군데 부르트고 생채기 났을
내 헐거운 집이여
가만히 껍질을 만져보네. 생애 처음으로 만져보는
내 껍질, 내 슬픔의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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