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그늘 / 심재휘

by 丹野 2009. 1. 10.

 

 

그늘

 

심재휘

 

그늘이 짙다

8월 해변에 파라솔을 펴면

정오의 그늘만큼 깊은 우물 하나

속없이 내게로 와 나는

그 마음에 곁방살이하듯

바닷가의 검은빛 안에 든다

 

한나절 높게 울렁거리던 파도가

슬픈 노래의 후렴처럼 잦아드는 때

더운 볕도 기울고 그늘막도 기울어

조금씩 길어지던 그늘은

어느덧 바닷물에 가 닿는다

 

물빛을 닮은 그늘은 넉넉하다

우물 안의 맑은 샘물처럼

그늘은 이제 바다에서 흘러나온다

바다 속의 넓은 고독으로부터

슬며시 빠져나온 손 하나가

내 발을 덮고 가슴을 덮는다 곧 있으면

제 빛의 영토로 돌아갈 찬 손 하나가

 

그러나 그늘은 큰 그늘 속으로 돌아갈 뿐

내 곁에서 사라지지 않으나

다만 내가 못 볼 뿐이니

밝았다 저무는 것은 내 안의 빛이었으니

넓은 넓은 바닷가에

내가 덮고 있는 그늘 하나

해질녘의 그늘 같은, 늘 그리운 사람

 

 

 

                                                          포탈라궁에서 /  p r a h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