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avenna
이규보의 「論詩」 (시를 말함)
임 보(시인)
고려의 문사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평생 8천 수에 가까운 많은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그의 천재적인 시재詩才는 「한림별곡」의 가사로도 읊어지고 있다. 곁에서 부르는 운韻에 따라 거침없이 시를 지어가는 소위 ‘주필走筆’의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비교적 긴 분량의 작품들이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서도 널리 알려진 것은 최초의 민족 서사시로 평가받는 「동명왕편」이다.
이 자리에서는 그의 「論詩」라는 작품을 통해서 당시의 시의 경향과 그의 시관詩觀의 일면을 엿보고자 한다.
1) 作詩尤所難 시 짓기가 더욱 어려운 바는
2) 語意得雙美 말과 뜻을 아울러 곱게 해야 하기 때문.
3) 含蓄意苟深 함축된 뜻이 진실로 깊으면
4) 咀嚼味愈粹 씹을수록 그 맛이 그윽하고 맑다네.
5) 意立語不圓 뜻은 얻었지만 표현하는 말이 원만치 못하면
6) 澁莫行其意 껄끄러워 그 뜻을 제대로 펼 수 없겠지.
7) 就中所可後 가장 나중에 살펴도 되는 것은
8) 雕刻華艶耳 문장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지만
9) 華艶豈必排 화려한 문장이라 해서 어찌 배척만 하리
10) 頗亦費精思 그것도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
11) 擥華遺其實 (그렇기는 하나) 꽃만 쥐고 열매를 버린다면
12) 所以失詩旨 시의 뜻을 잃게 되기도 하겠지.
13) 邇來作者輩 근래에 시 짓는다는 무리들은
14) 不思風雅義 시의 바탕이 되는 옛 글들은 생각지 않네.
15) 外飾假丹靑 울긋불긋 거짓으로 겉만 치장하며
16) 求中一時嗜 한때의 유행만 따르려 하네.
17) 意本得於天 뜻이란 본래 자연히 얻어지는 것
18) 難可率爾致 일부러 불러오기란 쉽지 않은 일.
19) 自商1)得之難 그 뜻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20) 因之事綺靡 그 때문에 현란한 수사에만 쏠리는구나.
21) 以此眩諸人 화려한 수사로 여러 사람들을 현혹시켜
22) 欲掩意所匱 자신의 뜻이 보잘 것 없음을 감추려한다네.
23) 此俗寖已成 이러한 풍조가 점차로 관습이 되어
24) 斯文垂墮地 좋은 글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네.
25) 李杜不復生 이백과 두보 같은 시인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
26) 誰與辨眞僞 누구와 더불어 참된 글을 가려내랴.
27) 我欲築頹基 원컨대 시의 무너진 기틀을 다시 쌓고 싶지만
28) 無人助一簣 흙 한 삼태기 날라 도와줄 사람 없구나.
29) 誦詩三百篇 시경의 시 300편을 다 외우면서
30) 何處補諷刺 풍자로나마 바로잡을 곳 어디 있겠는가?
31) 自行亦云可 내 혼자 행하는 일,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32) 孤唱人必戱 외롭게 홀로 외쳐대면 사람들은 비웃으리.
― 「論詩 (시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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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商’은 ‘취’(+山+而)의 한자가 없어 필자가 바꾸어 넣었음.
예로부터 시라는 글은 짓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천하의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규보가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으니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또한 시의 내용과 형식의 문제 역시 오늘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중요한 쟁점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규보가 「論詩」에서 읊고 있는 요지는 다음의 6가지로 정리된다.
㉮ 1)~4) : 좋은 시는 뜻과 말이 잘 어울려야 되는데, 뜻이 깊어야 그윽한 맛을 지닌다.
㉯ 5)~10) : 뜻이 말에 앞서지만 표현을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 11)~16) : 근래의 시풍은 전통은 무시하고 화사한 치장에만 기울고 있다.
㉱ 17)~22) : 깊은 뜻을 얻기가 어려우니 화려한 수사로 얕은 생각을 감추려 한다.
㉲ 23)~26) : 황폐한 현 시단이 개탄스럽다.
㉳ 27)~32) : 그릇된 시단의 풍조를 개선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를 다시 더 요약하면 다음의 3가지로 정리된다.
Ⓐ ㉮, ㉯ : 시는 뜻과 말, 곧 좋은 내용과 적절한 표현이 잘 어울려야 한다.
Ⓑ ㉰, ㉱ : 그런데 근래의 시는 뜻은 소홀히 하고 화사한 수식에만 기울고 있다.
Ⓒ ㉲, ㉳ : 그릇된 시단을 바로잡고 싶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한편 이규보는 「論詩中微旨略言」(『이상국집 제22권』)에서 다음과 같이 시에 대한 생각을 적고 있다.
시는 의意가 주가 되는데 의[뜻]를 세우는 일이 가장 어렵고, 말을 맞추는 것은 그 다음이다. 의意 또한 기氣가 위주가 된다. 기氣의 우열에 따라 뜻의 깊고 얕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氣란 천성天性에 딸린 것이어서 배워서 이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가 떨어지는 사람은 글 다듬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의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체로 글을 깎고 다듬어 구句를 아롱지게 하면 아름다움에는 틀림없지만 거기에 심후深厚한 의가 함축되어 있지 않으면 처음에는 볼 만하다가도 다시 씹어 보면 맛이 없어진다.
시에서 뜻[意]을 세우는 일이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뜻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氣에서 유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기의 우열에 따라 뜻의 질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천재적인 시의 재능을 지닌 시인들은 뛰어난 기를 타고 났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괴테나 이백 같은 시인들은 평소에 소위 영감이라는 것이 자주 떠올라 이를 써 놓으면 바로 시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바로 뛰어난 기를 타고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기가 선천적인 것이니 뜻 역시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단 말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뛰어난 기를 타고 나지 못한 사람이 깊은 ‘뜻’을 세우고자 하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충고로 이해된다. 그런데 항간에는 좋은 뜻 세우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화사한 수사로 얄팍한 뜻을 감추려 한다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의 풍토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규보가 살았던 당대의 풍조도 생각을 새롭게 하기보다는 남의 눈가림을 위한 수사修辭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를 못 마땅하게 생각한 이규보는 뜻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신의론新意論’과 함께 그의 시론이 담긴 「論詩」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릇 모든 발언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선행한다. 내용이 결정되면 그 다음에 그 내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신통찮으면 아무리 화사한 치장을 해 보아야 볼 품 없이 되고 만다. 마치 천박한 속인을 귀골인 듯 성장盛裝시키는 꼴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니 표현에 앞서 내용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의 구조주의 이론가들 가운데는 형식과 내용은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형식이 곧 내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수긍이 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형식이 내용일 수 없고, 또한 모든 내용이 형식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부분적인 관여 때문에 내용과 형식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온당치 못하다. 더욱이 ‘무의미의 시’에서처럼 형식 절대주의에 빠지는 경향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오늘의 시에서 혼란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도 편 형식적 경향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편 내용이든 편 형식이든 어느 한 쪽으로 기운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훌륭한 뜻(내용)을 가장 적절한 말(형식)로 표현하는 것이 시의 이상이다. 이러한 생각은 고금을 통해 변함이 없건만, 시의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균형을 못 잡고 방황하고 있는 것만 같다.
출처-우리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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