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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창작 강의

[이승훈]소쉬르의 언어학

by 丹野 2008. 3. 2.

 

 



 

[이승훈]소쉬르의 언어학

 

 

자의적 변별적 기호 체계

 

 

20세기 문학 이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언어학자는 스위스

태생의 소쉬르이다.   현대시와 언어학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피기에 앞서 그의 언어학이 보여주는 특성을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에 의하면 언어는 자의적 변별적 기호 체계로 정의된다. 여기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언어의 특성으로는 언어가 기호라는 점, 언어

적 기호는 자의성을 띤다는 점, 그리고 변별성과 체계성을 띤다는

점이다. 좀더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언어가 기호라는 사실은 모든 기호가 그렇듯이 언어 역시

어떤 지시물을 대신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예컨대 '산'이라는 낱말은

산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지시하거나 아니면   이 대상이 추상화된 개

념을 대신한다.    그런 점에서 언어적 기호는,  그의 용어에 따르면,

말소리와 개념으로 구성된다.  말소리를 그는 시니피앙이라고 부르고

개념을 시니피에라고 부른다.  시니피앙은 흔히 기표로, 시니피에는

기의로 번역된다. 이 기표와 기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로 존재한다.

 

 

 

 

   그러나 언어적 기호의 경우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다른 기호와는

구별되는 특성을 보여준다. 기호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그 가운데

이른바 징후와 언어적 기호의 차이를 살피기로 한다. 이마에 열이

있다는 신체적 징후는 감기라는 개념을 지시한다. 그러니까 이�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마에 열이

난다는 현상은 필연적으로 그가 감기에 걸렸거나 감기에 걸리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이라고 소리를 내는 것과 산

이라는 대상 혹은 개념 사이에는 아무 필연성도 없기 때문이다. 같

은 대상을 놓고 영국에선 mountain이라고 소리를 내며 프랑스에서

는mont라고 소리를 내며, 나아가 중국에서는 또 다르게 소리를 내

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이렇게 기표와 기의 사이에 어떤 필연성도

없는 관계를 이른바 자의적 관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언어적 기호의 경우 기표와 기의는, 비록 자의적인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동전의 앞뒤 관계, 곧 일정한

체계를 소유한다. 모든 체계 가운데 가장 단순한 것으로는 이른바 2

항 체계를 들 수 있다. 언어적 기호가 보여주는 체계성은, 그런 점

에서, 기표와 기의라는 2항 체계를 띤다. 물론 이런 사실은 좀더 발

전하면 기표와 기표의 체계, 기의와 기의의 체계로 확장된다.

                                                           

                                                                            

 

낱말이 의미를 환기하는 것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성을 토

대로 한다는 점에서, 낱말 밖에 있는 구체적 대상을 지시하기 때문

이 아니다. 모든 언어적 기호는 기호 밖에 있는 구체적 대상이나 현

실과는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의미를 생산한다. 이때 자율적이라는

말은 언어적 기호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 곧 체계가 생산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소쉬르는 변별성이라고 부른다. 예컨

대 '나'라는 낱말이 의미를 생산하는 것은 '나'를 뜻하는 구체적 인

물을 지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 체계 속에서 이 낱말과 변별되는

'너'라는 낱말과의 관계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나'라고 부를 때 그

는 모든 사람을 지시한다면 그것은 객관적 대상을 소유하는 게 아니

다. 이 '나'라는 낱말은 언제나 '너'라는 낱말과의 대립성 혹은 음운

론의 용어인 변별성에 의해서만 의미를 생산한다.

 

 

 

 

 소쉬르에 의하면 또한 우리의 언어활동은 이른바 말 (parole)과 언

어(langue)로 구성된다.  말이란 일상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실제로

수행하는 현실적 발언을 의미하고, 언어란 이런 발언의 배후에 있는

보이지 않는 체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말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은 특

성을 띤다면 언어는 이와는 달리 보편적이로 추상적인 특성을 띤다.

 

 

 

소쉬르에 의하면 말이 있고, 다음에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

로 언어가 먼저 있고, 다음에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일상

적인 발언은 문법체계가 있음으로써 가능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언술의 표면에 드러나는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숨어 이 말을 가능케 하는 체계적이로 심층적인 언어이다.

모든 개별적인 말이 말로서 수행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문법체계를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현대시에의 영향

 

 이상과 같은 그의 주장은 매우 과학적이며 현대 문학 이론,  특히

구조주의 문학 이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현대시의 이론에 영향을 준 것으로는 언어체계를 수평과 수직의 관

계로 해명한, 이른바 통합적 관계와 계열적 관계에 대한 견해이다.

 

소쉬르가 언어학자로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까지 언어연구를 지배

하던 통시적 방법을 극복하고 공시적인 방법을 개척한 공로 때문이

다.

 

 이 공시적인 방법이란 언어체계를 하나의 구조로 인식하면서

출발한다. 소쉬르는 그것을 통합적 관계와 계열적 관계로 나눈다.

통합적 관계란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간적 질서를 따르고, 서

로 교환될 수 없고 언술의 표면에 나타나며,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적 관계는 시간적 계기성을 따르며, 수직

의 축 위에서 진행된다. 예컨대 '소가 짐을 운반한다'는 문장이 그렇

다. 이 문장에서 언술을 구성하는 세 요소는 위에서 지적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요소들은 수직의 축, 곧 계열적 관계에 있어서는 시간

적 질서를 따르지않고, 서로 교환될 수 있으면, 언술의표면에 드

러나지 않고, 서로 유사한 관계에 있게 된다.   계열적 관계에 있는

요소로는 '소'의 경우 '당나귀. 노새. 말'등이, '짐'의 경우 '꼴, 덤

불, 장작'등이, '운반한다'의 경우 '나른다, 옮긴다, 싣고 간다'등이

있다. 요소들이 통합적 관계에 있는 것을 통합체, 계열적 관계에 있

는 것을 계열체라고 부른다.

 



[이승훈]'모더니즘 시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