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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아보자.
오직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삶을 낭비해 보자.
#행복
아직도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우리 모두는 정말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해서 오히려 다가올 불행한 날들이 두려워졌을 정도이니까
그런 날들이 우리 기억 속에 분명 하루쯤은 존재하고 있다.
그 하루의 향기가 불행한 날을 잊게 만든다.
#홀연한 여행
여행은 홀연했다.
바람이 불어오면 떠났고
비가 그치면 길을 나섰다.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당연했으며
그렇기에 맹목적이었다.
돌아오겠다는 기약 따위는 없었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위험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너에게로 홀연히 건너갔으며
나는 두렵지 않았고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너를 여행중일 뿐이다.
잠시 깃들다 가겠다.
#소중한 고독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데 익숙하지 않아
불안해하지.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메신저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날리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심하곤 하지.
이제는 그들로부터 떠나보는 거야.
기꺼이 혼자가 되어보는 거야.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길을 걷고
밤하늘 아래 가만히 서 있어보는 거야.
낯선 여관에서 혼자 잠을 자며
너의 숨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는 거야.
꼭 한 번 시도해 보는 거야.
생각보다 평화로워질 거야.
비로소 네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테니.
#땅 끝에서
그래서 끝으로 갔다.
생이 자꾸만 끝으로만 밀려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자진해서 끝까지 가보자고 해서
땅 끝으로 간 것이었다.
땅 끝에서
더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막바지에서
바다를 보았다.
해 지는 바다가 너무 아파서 울었다.
다음날 아침
해 뜨는 바다를 보고
땅 끝에서도 아침 해는 뜨는 구나 하며
또 울었다.
그리고 밥을 먹었다.
모래알 같은 밥을 꾸역꾸역 목구멍 속으로 밀어넣었다.
땅 끝에서
등만 돌리니 다시 시작이었다.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나요?
누군가는 사랑을 버리기 위해
누군가는 남루한 삶을 견디기 위해
누군가는 깨달음을 위해
누군가는 밥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누군가는 지구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
그러니까, 이 세상의 여행자가 모두 100명이라면
여행을 떠나는 데는 100가지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여행을 왜 떠나느냐는
그런 질문은 참아주길 부탁해.
최갑수 포토에서이-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중에서(예담 출판사)
최갑수
1973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출판저널』과 『굿데이』 문화부 기자를 거쳐,『프라이데이』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여행전문기자로 일하며
국내외를 여행하고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프리랜서 여행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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