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와 文化의 意義
나호열
역사와 문화는 서로 포섭관계에 있는 개념이다. 이 둘은 고스란히 인간의 삶을 드러내준다는 점에서는 동일선상에 놓이지만 가치판단의 재료가 될 때에는 그 층위가 달라진다. 때로 문화는 역사에 포함되어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문화는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을 가지면서 역사를 규정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면에서 역사와 문화를 고찰해 보면 역사는 기록, 유물, 유적 등을 통하여 한 시대의 거시적이고 광범위한 틀을 찾아내려는데 반해서 문화는 미시적이고 분화된 생활상을 보여주는 양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와 문화는 우리 삶의 결을 이루면서 과거 속으로 퇴적되어 가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奮鬪는 고스란히 우리의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진다. 모든 삶의 행위들이 문화라는 무형의 양식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한 시대의 특정한 변화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후대에 전해진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그 까닭이 바로 역사를 인식하고 기록을 남기므로서 궁극적으로 인류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전통적인 서구적 사고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본주의와 정치제도상에서의 민주주의, 집단보다 개인의 권리와 가치를 중요시하는 자유주의로 표상되었다. 급기야 '역사의 종언'이 선언될 지경에 이르렀으나 오늘날의 실상은 그러한 역사의 종언을 허락하지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순환적 역사관에 입각하여 '자연'과 그 자연 속에 포함된 '인간'으로 돌아가려는 동양적 사유가 훨씬 더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의의를 되새김하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 마디로 역사는 과거의 흔적이다. 그 과거의 흔적은 역사서로 기록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의 유물과 유적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우리는 서양 역사학의 태두로 불리우는 헤로도토스나 참혹한 궁형을 당하고 史記를 쓴 사마천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다. 그들이 아무리 객관적 사실의 記述을 염원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개인적 기질에 따라 편향된 기술을 하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기술된 내용의 해석이나 비판은 언제나 후대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값어치는 해석과 비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述而不作의 태도로 일관한 성인이다. 그는 집적된 과거의 유산에서 얼마든지 오늘에 통용되는 지식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논어 위정편 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의 구절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과거 유산이 얼마나 유용한 반성의 자료가 되는 것인가를 역설한다. 桀과 紂를 통해서 폭군을 경계하고 堯와 舜을 통해서 德治를 배우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는 모두 오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인간성을 구현하기 위한 발전의 토대인 것이다. 그 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한 민족, 한 국가의 정체성을 찾아낼 수 있고 주체성을 확립하는 토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교통과 통신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지구촌화 되어가고 있고 통일적 문화구조를 통한 세계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반발로 민족주의인 사조가 또 한 편에서는 꿈틀거리고 있다. 근래에 불거져 나온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사 왜곡이나 일본에 의한 독도영유권 주장들은 世界善隣의 구호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한 생각은 더욱 깊어져야 한다. 한 민족의 正體性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성향과 기질을 가졌는지를 자각하는 일이다. 그 자각은 무조건적인 민족 우월의식의 고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찌 발전이 있을 수 있으며 타인과의 원활한 교섭을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의 뿌리를 알고, 우리의 장, 단점을 헤아려 갈무리하는 일이 바로 정체성에 대한 논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확립 없이는 우리의 주체성을 논하기가 어렵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서 남을 알 수는 없지 않은가?
앞 서 말한 세계화, 세계시민으로의 이행은 주체적인 비판과 선택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인 서구선호의 의식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의 확립은 올바른 역사 인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 왕조의 몰락 이후 100년 동안 우리 한 민족은 급격한 변화 속에 놓이게 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36 동안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우리 역사의 왜곡과 침탈은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고, 6.25 전쟁과 남북 분단 그리고 이어진 군부 독재와 민주화투쟁은 올바른 역사 인식과 비판에 있어서의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장면은 산업화의 문제이다. 세계사의 한 획을 그으며 고속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던 산업화의 여파는 국토의 훼손과 자연환경의 파괴, 물질만능에 편승한 결과주의를 추수하는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물질적 풍요는또 한편으로는 무분별한 미국문화의 유입으로 이어지고 이기주의적인 사고는 이 사회를 정체와 주체를 망각하게 하는 병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인사동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풍모를 한 눈에 알아채기 쉬운 장소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 들, 처마 낮은 집들, 작은 규모의 골동품 가게들. 전통 찻집들, 낡은 음식점에서 풍겨 나오는 청국장 냄새, 이런 것들이 외국인을 흡인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인사동은 어떠한가?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보도 블럭이 새로 깔리고. 외국 프랜차이즈의 레스토랑들, 카페들이 즐비하다. 상업주의와 옛 것에 대한 폄하는 종국에는 문화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문화는 제도와 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연적인의식이며 행동의 결과물이다. 문화는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화한다. 문화는 우리의 온갖 행위나 양식에 덧붙여질 수 있는 것이다. 성, 음식, 교통, 주거 등등 더 나아가서 정치에도 문화를 덧붙여서 오늘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드러냄이 앞서 말한 정체성이요,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의식적이고 능동적으로 우리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주체성이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각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우리의 반 만 년 역사는 문화민족의 성향을 고스란히 각인시켜 놓았다. 우리가 살아온 이 땅의 지리적 특성과 환경이 삶의 형태를 이루고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너무 많아 소홀히 대하고, 알지 못하여 영원히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선인들의 흔적이 너무 많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교육은 더 강화되어야 하고 그 역사교육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나 현상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오늘의 거울에 되비추어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혜안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은 역사에 대한 자각, 반성, 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을 바로 잡는 일을 저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왜 통나무집에서 살지 않고 초가집에서 살았는가? 왜 우리는 전탑 보다는 석탑이 많은가? 이렇게 소소한 질문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앎을 확대시키고 사랑을 넓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도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문화의 가치는 축적되어 가고 있다. 내가 바로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생각,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때묻은 물건 하나에 눈길을 주는 태도가 문화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아닐까?
Dartmoor, Devon
'나호열 시인 > 세상과 세상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에서의 발견의 의미 / 나호열 (0) | 2008.03.01 |
---|---|
아다지오 칸타빌레 adagio cantabile / 나호열 (0) | 2008.01.22 |
달팽이처럼 낙타처럼 안개처럼 / 김삼주 (0) | 2007.12.12 |
시인으로 세상을 건너다 (0) | 2007.12.11 |
현대시에 나타난 섹슈얼리티 sexuality / 나호열 (0) | 2007.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