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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깊은 잠- 경주 남산 마애불상

by 丹野 2010. 10. 22.

 

 


   깊은 잠
-*경주 남산 마애불상


김경성




솔방울 빠져나온 나온 씨앗
지상의 말 퍼트리며 날개 파닥거려 먼 여행 떠날 때
소나무 가는 잎에 걸려 그림자 내려놓은 적 있다
그대와 마주 보며 서 있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 우리 머리 위에 쏟아졌던 햇빛이라든가, 바람이라던가
봄날, 때죽나무꽃 지고
씁쓰름한 열매 즙에 기절한 물고기 떼 강물에 떠내려갈 때도
바람 부는 쪽으로 몸 기울여 바람의 말을 들었다
어느 날 여진이 밀려와
무릎 꿇고 말았던 그때,
그대 발등 위에 내려앉아 유적이 되어갔던 꽃잎을 기억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이었다
제비꽃 꽃술에 이마를 대고
지층으로 흘러다니는 세상의 말, 두 눈 꼭 감고 들었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뿌리와 뿌리로 엉켜있는
지층 속으로 흘러가는 말들은 간결했다
민들레 뿌리, 쇠비름 뿌리
해마다 내 몸에 기대어 흔적 없이 사라져갔지만
그대 앞에 엎드려 바라보았던 것, 두 귀로 들었던 것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말발굽 소리와
창이 부딪치는 소리,
시위를 떠나 날아가던 화살까지
모두 내 안으로 들어와 경전이 되었다 내몸 
위로 지나간 시간의 뿌리가 있다, 꽃들의
자국이 있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 천 년의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내 몸 안에 스며든 기억의 뿌리, 그대 앞에
펼쳐놓으려 한다

몸 일으켜 바라본 그대, 여전히 눈부시다
  

 

-2007년 5월말 경주 남산 열암곡(列岩谷)에서 발견됨. 발견 당시에는 불상을 조각한 면이 땅에 파묻혀 그 윤곽 정도만 희미하게 드러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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