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거울의 기억
김경성
탑 너머 어딘가에 있는 그대에게 닿으려고
청동거울 속에서 꺼낸 목단 꽃잎 가슴에 붙이고
새벽 길 떠났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 옆에 오래된 탑이 있었다
청동거울 속으로 탑 그림자를 전송하는 동안
출처를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와서 나뭇잎 흩날렸고
늦가을 장미 더 붉어졌다
꽃잎 한 장 한 장 떼어 장미 한 송이의 즙을 먹었다
향기로움의 맛은 얼마나 독한 것인지
그대인 듯 바라보는 오래된 탑에서 장미의 향기가 났다
나뭇가지에 긁힌 달의 근처 폐사지
산수유나무 신맛 다시며 붉게 휘어지는데
먼산 쓸고 내려온 어둠, 풍경 덮으며 산문을 나서라고 한다
탑 그림자가 있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어디가 출구인지 알 수 없는 폐사지에서
청동거울 뒷면의 덩굴무늬
장미의 독이 오른 내 몸을 휘감더니
탑 그림자가 있는 거울 속으로
끌어당겼다
검붉은 장미의 즙이 내 몸에서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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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사지에서 / p r a h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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