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사색 편지
-비우니 향기롭다-
지은이의 말-
감히 말하지만, 나는 평생 주기적으로 '혁명'을 꿈꾸었다. 누군들 그
렇지 않겠는가 내게 혁명이란,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험적으로, 혹은
환경이나 습관의 축적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느
끼는 일상 속에 나를 통째로 뒤집어 변화시키는 일이다. 나를 근본적으
로 변혁시키지 않고선 세계가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운 것들은
아직도 너무 멀고 높은데 나의 실존은 여전히 너무도 가깝고 낮은 것이
나의 큰 문제이며, 곧
'우리'의 문제이다. 사는 게, 이대로 좋은가. 괜찮은
가. 충만하고 향기로운가. 인생에서... 남는 장사를 하고 있는가. 혹시
맹목적인
경쟁을 통해 달콤하고 안락한 삶만을 좇아, '사색'하고 '사랑'
할 겨를도 없이, 내 발의 물집조차 굽어볼 틈도 없이 허위허위 달려오느
라, 더 드높은 어떤 것들을 내다 버리지 않았던가. 이를테면 나의 영혼
과 나의 우주와 나의 속깊은 사랑. 나의 눈물. 나의 목숨에 깃들어 있는
꿈 같은
것들.
2006년 2월 북한산 자락에서
박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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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어있는,
98P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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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0- 마지막 장
밤 깊은 카트만두는 조용합니다.
몸은 너무 피곤하여 천리만리 벼랑 속으로 내려앉는 것 같은 데
밤이 깊을수록 영혼은 더욱 또렷이 불을 밝히고 살아납니다.
히말라야 산협 사이를 70여일 동안 걸으면서 가장 아프게 다가온 회한은
거의 모두 사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범박하고 상투적인 말이라고
비난하셔도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불멸은 꿈일진대, 사랑이외에
우리가 진정을 다해 말해야 할 것이 얼마나 더 있을까요.
사랑 이외에 우리가 목놓아 울어야 할 것이 또 무엇이 있고, 진실로 사랑
이외에 우리가 모든 것을 맡겨도 좋은 것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돌이켜보니, 나는 사람이었고, 사람이므로 사랑하며 살아왔습니다.
사랑은 나의 명줄과 같았습니다. 싸움도 사랑 때문에 했고, 욕망의 모든
비명도 사랑 때문에 내지른 것이었는데, 그러나 살아 온 지난날의 대부분,
나의 사랑은 사랑이었다기보다 사랑의 습관이었으며, 사랑의 습관이라기보다
사랑의 '모방'에 불과했습니다.
성자에 이르는 가장 높은 길이 '사색'이라고 갈파한 공자님 말씀은 히말라야를
걷고 있는 동안 줄곧 내게 가장 아픈 채찍이었지요. 나는 개발의 급속의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오면서, 작가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사색을 잃어버렸고,
그리하여 참된 '사람의 사랑'에 이르지 못한 채 이 나이에 쓸쓸한 유랑의 길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히말라야가 그것을 내게 명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누가 됐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겠지요. 또 누구든지 욕망의 날이 푸르게
서 있는'이곳'서 상그리라나 다름없는 불멸의 꼭대기 '저곳'으로 사다리 하나
아름답게 놓고 싶겠지요.
길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 길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삶의 방식을
단호히 바꿈으로써 '나'와 '우리'들이 '혁명적'으로 깊어지고 고요해져서
진실로 '사랑의 얼굴을 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습관으로서의 사랑법에
길들여 살아온 내가 과연 혁명적으로 깊고 고요해질 수 있을지, 두려울 뿐입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짐을 꾸리면서도 끝내 홀가분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언제쯤 돼야 과연 꽃그늘처럼 환한 본성의 얼굴을 하고 그리운 내 집에
부끄러움 없이 돌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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