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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울금빛 저녁 외 2편 / 유재영

by 丹野 2022. 9. 6.

울금빛 저녁 (외 2편)

 

   유재영

 

 

   새끼 당나귀에게 마지막 여물을 챙겨준 만족蠻族의 아내가 조곤조곤 기도를 끝내자 화덕가에 둘러앉은 가족들이 기장떡을 떼어 물었다, 오목한 알타이 산맥 아래로 가만히 열렸다 닫히는 울금빛 저녁,

 

 

 

구름 농사

 

 

일용할 이슬 몇 홉,

 

악기 대용 귀뚜라미 울음 몇 말,

 

언제고 타고 떠날 추녀 끝 초승달,

 

책 대신 읽어도 좋을

 

저녁 어스름

 

아,

 

그 집에도

 

밥 먹는 사람이 있어

 

하늘 한 귀퉁이 빌려

 

구름 농사 짓는다

 

 

 

겨울 유물론 唯物論

 

 

   흩어지는 바람들이 며칠째 필라멘트처럼 떨고 있다 지난봄 옮겨 심은 모감주나무는 한 해의 휘어진 부분을 발밑에 조용히 내려놓는다 나는 돌아서서 지구의 모서리를 힘껏 걷어찼다. 여전히 과묵한 테라코타, 골반은 닳아 삐걱대고 빙하의 물은 벌써 시장경제론 앞에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첫서리가 내리기 전 북쪽으로부터 날아온 수상한 새들이 저마다 큼지막한 날개를 접으며 겨울 경내境內로 들어왔다 올해의 추위는 머지않아 설악을 거쳐 문막에 이를 것이다

 

 

        —시집 『구름 농사』 202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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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영 /1948년 충남 천안 출생. 시인⸳북 디자이너. 1973년 박목월 시인에게 시를, 이태극 선생으로부터 시조를 추천 받아 문단에 나옴. 시집『한 방울의 피』『지상의 중심이 되어』『고욤꽃 떨어지는 소리』『와온의 저녁』『구름 농사』, 시선집 『변성기의 아침』등과 시조집『햇빛 시간』『절반의 고요』『느티나무 비명(碑銘)』등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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