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는 빛의 동굴 같았다. 때로는 모든 시간을 한꺼번에 쌓아놓고
하나씩 되새김하는 것도 괜찮은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많아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어야 했지만, 실크로드로 가는 낙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재봉틀 돌아가는 그 소리, 아직도 카펫을 짜고 있을 실크로드의 여인들
낡고 오래된, 소소한 것들, 아니 귀한 것들이 내는 울림은 참으로 컸다.
실크 로드
김경성
신당동 집 아래층 양복공장
실크로드에서 카펫을 짜던 사람이 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재봉틀 소리
사막으로 돌아갈 길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안개 걷히지 않은 새벽 여섯 시
낙타를 타고 먼길 떠나는 사람의
손끝 아린 비단 실
씨실 날실 그가 걸어갈 길의 무늬를 그린다
온종일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던 길
돌아보면 발자국은 바람에 지워져 있었다
밤새 짜던 카펫 속 길,
모퉁이에 앉아 마시는 박하차처럼
마음 끝에 걸리는 알싸한 실타래는
다음 날 새벽이 오도록 멈추지 않는다
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재봉틀 소리를 타고 실크로드를 걷는다
샹그릴라는 멀지 않다
- 시집 『 와온 』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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