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있었습니다.
오백여 년 된 나무가 칸칸마다 넓은 하늘을 끌어다 만든
마량리 동백나무 숲의 꽃살문의 정점은 아주 작은 동박새였습니다.
휘어진 나무 위에 앉아서 소리를 삼키고 이쪽저쪽 바라보다가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고 작디작은 동박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동백나무 꽃살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새가 마음을 연 것이지요. 새가 제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이봄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저는 동백나무가 세워놓은 꽃살문의 그림이 된 동박새와 교감해서
아주 행복합니다.
죽은 나무가 빚어내는 꽃살문도 아름답지만 살아있는 나무와 살아있는 새가 빚은 꽃살문도 아름다웠습니다.
어디서든 한 곳에 오래 있어보면 압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귀를 열고 있다는 것을요.
마량리동백나무 숲에서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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