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에서 정릉 골목까지
아바나에서 정릉 골목까지
다정한 연인
세상의 모든 골목은 닮아있다. 다정하게 옆구리에 끼고 가는
골목길은 연인 같아서 이따금 푸릎같은 계단에 앉아 쉬었다가 가기도 하고
제가 나무인 줄 알고 전단지를 이파리처럼 흔들어대는 모퉁이 전봇대까지도
너무나도 다정한 연인이어서
늘 그날인 것처럼 그 자리에 마중나와 주는
깊은 저녁 혼자가는 길을 따라오는 그림자 있어 뒤돌아 보면 그도
뒤돌아보며 괜찮다괜찮다 토닥토닥 발자국소리로 화답을 하는
맨 처음 발자국을 남겼던 사람은 지금
어느 넓은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지
이따금 목청 큰 소리가 작은 창문을 빠져나왔다가 골목을 돌아나가고
나는 봄밤 울컥울컥 피어나는 매화처럼 이파리 한장 없이도
멀리 아주 멀리 향기를 보낸다
골목길에서 자라고 익어갔던 오래된 연인들이
먼곳에서 받아든 향기를 들고 불쑥
찾아들어 제 안의 숨은 그림을 찾아 퍼즐을 다 맞출 때까지
휘어지고 구부러진 채로 그 자리에서 늙어가는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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