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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사진과 인문학/바람의 흔적

허공의 무덤

by 丹野 2019. 8. 11.



허공의 무덤
















허공의 무덤   

                                  김경성

  

수련 꽃 다 진 연못이 적막하다

이따금 들여다보고 가는 새들이 아니었다면

원시의 늪일 것 같은 저곳은

뻘 속에 뿌리를 내려서

식물들이 처음으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중생대의 시간을 끌어내어

울컥울컥 꽃이 피어나게 하는

근원을 생각하게 해준다

 

구름 걷힌 허공을 빈손으로 휘젓는 은사시나무 팔목이 희다

흩어진 구름 속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빛의 칼날이

고요를 가르며

제 자리인양 연못 가득히 들어가 있다

 

허공은 늘 무언가로 가득히 차 있다

새들은 날갯짓으로

허공의 허파를 어루만지고

나무는 선 채로 예를 갖추어 경배한다 

 

스치는 바람마저 머물다가는 물속에

허공의 무덤이 있다



- 시집 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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