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암華藏庵
김경성
뱃가죽이 붉은 뱀 한 마리가 길바닥에 뒤집혀 있다, 한 번도 누워본 적 없다는 듯
기다란 몸이 물결처럼 길을 건너가는 사이
뱀의 등뼈가 부서지도록 누군가 밟고 지나갔다
길바닥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자국이 아니어도 순간이 빚어낸 참혹한 스침이다
몸을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는
물푸레나무도 제 몸을 둥그렇게 구부려서 돌담에 기대고 있는 화장암華藏庵,
죽은 뱀을 뛰어넘어서 찾아갔으나
스님은 없고
풍경소리만이 절마당을 돌아나와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월의 작약은 제 향기를 이겨내지 못한 채 이끼 꽃 핀 담장에 꽃잎을 털어내고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빛이 바랜 빗살문의 그림자가
먹물을 엎지른 듯 번진다
말 없음으로 텅 빈 하늘과 텅 빈 암자를 가득히 채워가는,
달 속에 있는 듯
점점 부풀어 오르는 달 안을 거니는 듯
고요의 담장을 두르고 높은 곳에 떠 있는
적막하고 쓸쓸한 암자
*경상북도 문경시 운달산 중턱에 자리한 김룡사의 산내 암자
시와시학 2016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