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향
김경성
섬이 서 있다
수백 년 동안 키도 크지 않고 늘 그만큼의 높이로 무엇인가 가득히 묻혀있다
야생의 시간은 늘 그들의 몫이었다
누군가의 빗금 안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염소떼의 몸을 빠져나온 푸른 잎사귀
바다의 문턱을 넘어서거나 해국 그늘 아래에서
검은 눈으로 섬 바깥을 응시하기도 한다
잎사귀를 바람에 다 내어준 동백나무에 깃들어 꽃의 눈을 틔우는 동박새 깃털이 잎인 듯 빛이 난다
섬에서는 하루가 백 년처럼 흘러간다
바다가 피워올리는 흰꽃숭어리를 퍼 올리는 염소들,
섬 위쪽까지 올라오는 파도 소리를 귓속에 채우고
바람의 허리를 뭉텅뭉텅 베어먹으며
길 아닌 길까지 자근자근 제 몸에 들이고 있다
저 섬이 수억 년 동안 끄떡하지 않는 것은
푸른 잎사귀로 빚은 염소 똥과
털머위 노랑꽃, 둘레둘레 피어있는 해국, 그 작은 것들이
섬의 심장을 어루만지기 때문이 아닐까
염소 똥이 섬의 치맛자락에 줄임표로 찍혀 있다
- 계간 『시와문화』2016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