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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침향

by 丹野 2016. 3. 30.



침향 


김경성

 


섬이 서 있다

수백 년 동안 키도 크지 않고 늘 그만큼의 높이로 무엇인가 가득히 묻혀있다

 

야생의 시간은 늘 그들의 몫이었다 

누군가의 빗금 안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염소떼의 몸을 빠져나온 푸른 잎사귀

바다의 문턱을 넘어서거나 해국 그늘 아래에서

검은 눈으로 섬 바깥을 응시하기도 한다

 

잎사귀를 바람에 다 내어준 동백나무에 깃들어 꽃의 눈을 틔우는 동박새 깃털이 잎인 듯 빛이 난다

  

섬에서는 하루가 백 년처럼 흘러간다

바다가 피워올리는 흰꽃숭어리를 퍼 올리는 염소들,

섬 위쪽까지 올라오는 파도 소리를 귓속에 채우고

바람의 허리를 뭉텅뭉텅 베어먹으며

길 아닌 길까지 자근자근 제 몸에 들이고 있다

 

저 섬이 수억 년 동안 끄떡하지 않는 것은

푸른 잎사귀로 빚은 염소 똥과

털머위 노랑꽃, 둘레둘레 피어있는 해국, 그 작은 것들이

섬의 심장을 어루만지기 때문이 아닐까

 

염소 똥이 섬의 치맛자락에 줄임표로 찍혀 있다

 

 

  

 

 - 계간 『시와문화』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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