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간이역

by 丹野 2016. 3. 30.

간이역


김경성

 

철길에 귀를 열고 기차의 발걸음 소리를 받아적는

맨드라미에 얼굴을 묻었다

 

찌르르르 끼르르륵

맨드라미의 겹쳐진 꽃 주름 사이에서 기적 소리가 들렸지만 날이 저물도록 기차는 오지 않았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시계추

둥둥둥 소리를 내며 천장까지 닿았다

멈춰있는 초침을 잡고 맴돌았다

 

쑥쑥 자라는 나무들

나무뿌리가 역사 안을 가로질러서 물컹물컹 뻗어 나갔다

 

기차는 오지 않고

먼 기적소리를 꽃의 잇몸에 붙여서 잘 접어놓은 맨드라미의 몸 그림자가

철길 위에서 흔들렸다  

역사 안으로 스며드는 오후의 빛이 붉었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당신의 빈방에 물이 차오르고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나의 방에서는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헛꽃이 피었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참꽃은

맨드라미의 말이었고

기억 속의 간이역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였다

 

 

 

  

 - 계간 『시와문화』2016년 봄호





'丹野의 깃털펜 > 김경성 - 근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작시 특집] 늙은 집 外 2편 / 김경성  (0) 2016.03.30
침향  (0) 2016.03.30
바람의 통증  (0) 2014.07.12
바다로 간 목마  (0) 2014.02.04
목제미륵보살반가사유상 외 1편 / 김경성  (0) 2013.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