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에서
나호열
길은 옛길이 좋아
강 따라 구비치며 가다가
그리움이 북받치면 여울목으로 텀벙 뛰어들고
먼 이름 부르고 싶으면
산허리를 칭칭 동여매어 돌다가 목이 매이고 말지
그렇게 낮게 낮게
풀꽃마냥 주저앉은 사람들
고난으로 땀흘리는 마을이라고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몰라
옛길 사라지고
산은 가슴이 뚫리고
강은 거대한 다리에 가위 눌리고
막장에서는 더 이상 백악기의 더운 피가
솟구치지 않는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장춘몽의 투전 앞에
노고의 땀방울은 진주처럼 빛나는데
길도 가다가 잠시 멈추는 노쇠한 역 앞에
낙원회관 있다
허리끈 마음껏 풀고 죄짓지 않고 자랑스럽게 번 돈으로
소 등심 몇 점 붉은 마음을
불판 위에 올려놓는
나그네 몇 있다
- 계간 시와 소금 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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