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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적목 / 조용미

by 丹野 2014. 5. 25.

 

 

 

 

적목

  

조용미 

 

길 끝 나무에 검고 마른 잎사귀들이 매달려 있다

큰 나뭇잎 하나가 휘익 떨어졌다

검은 나뭇잎들은 어쩐 일인지 적의를 품고 있다 

 

나뭇잎마다 눈이 달려 있다 

 

마른 나뭇잎 하나가 바람도 없는데 높이 날아갔다

열매처럼 매달려 있는 검은 잎들

가까이 가보니 앉아 있는 까마귀들이었다 

 

까마귀들이 수십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저 풍경은 어딘가 친근하다,

불안하다

 

검은 새들이 가득 앉아 있는 나무는 지나치게 고요하다 

 

저 풍경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이 지금

내게 남아 있지 않다고

귀신같은 나무들에게 고백하지 아니하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휙 휙 지나가는 것들이

내용도 없이 나타난다

까마귀들이 붉은 눈으로 내 뒤의 세계를 바라본다

 

 

월간 『현대시』 2014년 3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