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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사곶 해안 / 박정대

by 丹野 2014. 4. 20.

       

       

       

      사곶 해안 / 박정대

       

       


      고독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바다의 문지방 같다
      주름진 치마를 펄럭이며 떠나간 여자를
      기다리던 내 고독의 문턱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었던 生의 밑바닥
      그곳에서 橫行하던 밀물과 썰물의 시간들
      내가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던 울음을
      끝내 갈매기들이 얻어가곤 했지

      모든 걸 떠나보낸 마음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렇게 넓은 황량함이 내 고독의 터전이었다니
      이곳은 마치 한 생애를 다해 걸어가야 할
      광대한 고독 같다, 누군가 바람 속에서
      촛불을 들고 걸어가던 막막한 생애 같다
      그대여, 사는 일이 자갈돌 같아서 자글거릴 땐
      백령도 사곶 해안에 가볼 일이다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 뒤에 남는 건 오히려 부드럽고도 견고한 生
      백령도, 백년 동안의 고독도
      규조토 해안 이곳에선
      흰 날개를 달고 초저녁별들 속으로 이륙하리니
      이곳에서 그대는 그대 마음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또 다른 生의 긴 활주로 하나 갖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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