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특성' 부분
나호열
이번 강의의 주제는 언어의 특성이었습니다. 강의의 의도는 여러분들에게 시는 언어를 도구로 한다는 것을 우선 말씀 드리고 나서 시에서 씌여지는 언어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比喩法 등 수사학적인 내용을 기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유법에 대한 강의는 실제 작품토론 시간에 게재할 것이니 기다려 주세요)
시는 언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가 지닌 특성을 먼저 알아 두어야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시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의 시에서 여러분들이 잘 모르는 단어가 몇 개나 있었습니까? 시에서 표현되는 언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은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연유합니다. 멋있는 것, 시적인 어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배열, 조합에 의해서 아름다움이 생성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고가 깊어지면, 언어의 사용 또한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겠지요, 그런 수련 기간이 경과하면 아마 여러분은 몰라보게 아름다워지고 시적인 상태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는 지시적인 기능을 대단히 강조하고, 사전적 의미로 해석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는 일상적인 언어를 구사하되, 상투적인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시는 정확히 현실을 인식하고 관찰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란 그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상식적인 내용으로 전락할 수 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당신은 정말 시적이야'라고 말합니다. 詩的이라는 것은 그 자체에 어떤 美의 형태를 갖추고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그 무엇에 대한 관점이 확립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단어는 그 의미망이 매우 넓습니다. 그리고 하나 이상의 단어가 서로서로 결합할 때 그 의미망은 크게 증폭합니다.
한 권의 시집을 여러 사람이 읽고 나서 어느 작품이 좋으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각양각색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환경과 자신의 시각에서 시를 해석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작품은 그 편차가 매우 큽니다.
언어는 그 하나마다 內包와 外延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연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개념이 지시하는 사물을 적용시킬 수 있는 범위'를 말하는 것이며 내포란 '한 사물이 함유하고 있는 속성의 집합'입니다. 언어의 조합과 배열이란 이렇게 우리가 관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내포와 외연을 틀을 조화시키거나 깨트림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의미망을 경험하게 하는 喚起의 장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어트Eliot는 '시는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매우 숙고해 보아야할 내용입니다. 새로운 의미망은 처음 '아! 이것을 시로 써 보아야 하겠다'라고 자신을 환기하는 동시에 어떤 사태에 대한 복사가 아니라 재해석하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시에서 쓴 언어가 보편적 일상언어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해서 피해야할 어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공간, 소리, 문자, 가로, 세로 등등의 단어'는 내포와 외연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이 시로 드러날 때에는 매우 모호한 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모호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뒤죽박죽 되어서 분간이 가지 않는 상태가 아니겠어요? 시의 특성은 曖昧性이다라고 한다면 그 애매성은 다양한 내포와 외연의 결합으로 다각적으로 해석 가능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리움, 슬픔, 외로움' 이런 단어들은 시에서 항용 사용되는 것이지만 시에서 정작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그리움의 상태, 외로움, 슬픔의 상태를 표현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정서를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한용운 시인의 ' 님의 침묵'이 훌륭한 시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님'이 상징하는 바의 의미폭이 매우 넓고 다양하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어느 사람에게는 한 편의 연애시로 읽힐 수도 있겠고, 또 어느 사람에게는 구도의 의미로, 또 어느 사람에게는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라고 廣義로 해석할 수 있는 그 다양성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할 중요한 점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강조점 :
1.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관습적 표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2. 詩語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3. 하나의 언어는 그 하나마다 지닌 의미가 있다 (배열, 조화: 바둑에서의 무궁한 포석처럼 언어의 무수한 포석을 생각하라
4. 시는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묘사를 통하여 미적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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