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변검 變臉의 하루 / 나호열

by 丹野 2013. 9. 16.

 

변검 變臉의 하루

 

나호열

 

 

구둣발에 밟히지 않으려고 지렁지렁 땅속으로 기어 다니다

 

무엇에 홀린 듯 무슨 새싹이라도 되는 듯 지상으로 올라와

용트림하다가

번뜩 눈을 뜨니 원래 나는 눈이 없었다

수컷 공작처럼 온갖 문양의 날개를 펼쳐 보이겠다고

스스로 다리 난간을 넘어갔으나

앗차! 몸이 무거워 날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 당겨주기를 바라는 허튼수작으로

내가 진심을 다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은 이런 화두를 던졌던가

쌓이면 오라

길을 덮었던 수많은 세월의 낙엽

소리 없이 내렸던 폭설이 그 위를 다시 밟고 난 후의

더듬더듬 발걸음을 내딛을 때 나는 사그락 소리

그 두렵고 안타까웠던 그 소리 터지는 순간

 

와르르 눈물 대신 쏟아지던 모래의 얼

 

 

 

- <인간과 문학> 2013 가을호

 

 

 

'나호열 시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 / 나호열  (0) 2013.09.18
밤바다 / 나호열  (0) 2013.09.18
수행修行 / 나호열  (0) 2013.09.05
가을 편지 / 나호열  (0) 2013.09.01
[악보] 눈물이 시킨 일 / 나호열  (0) 201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