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시즘_반서정의 서정과 80, 90년대 시
김춘식
1. 한국 서정시의 기원과 민족적 정서, 자연, 전통, 조선어
최근 서정시에 관한 찬, 반의 논의는 근본적으로 서정시의 본질적 개념을 둘러싼 문제라기보다는 서정시 혹은 시 자체가 시대적인 조건과 환경속에서 그 대응으로서의 보여준 모습이 지닌 의미와 편차에 관한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점에서 서정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굳이 이 자리에서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학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서정시는 한국시의 출발 지점에서부터 나름 그 역사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1920년대 동인지 문단에서 발표된 초창기의 다양한 시편은 서정시에 기초한 것이면서 동시에 ‘서정’의 시적 드러냄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필요가 있다. 기법이든, 언어의식이든 한국의 근대시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면, 한국의 현대시가 처음부터 서정시의 정립을 기초로 시의 새로운 길을 열어 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정시는 이 점에서 ‘자유시’의개념이나 형태처럼 처음부터 실체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근대적인 시의발전 과정에서 그 실체가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민요조 서정시나 현대시조, 민요시 등 자유시형과 조선시 정체성의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논의는 단순히 근대시나 조선시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시의 소재, 주제, 형식, 언어, 운율, 수사 등 형식과 기법 전반에 걸친 실험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 점에서 초기부터 중요한시적 준거점인 조선의 정서와 사상, 조선어라는 두 조건은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강박을 나타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식민지 상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콜로니얼과 포스트 콜로니얼의 두 의식이 부딪치며 빚어진 역사적 산물이 한국의 현대시, 즉 서정시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면, 조선의 정서와 사상, 조선어가 어떻게 구축되고 만들어졌는가 하는점은 서정시의 기본적 조건이 어떻게 갖추어 졌는가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문제이다. 즉, 식민지 시기의 문학적 혹은 시적 근대 기획의 가장 첨예한 논점이 조선의 시적 정서와 사상, 미적인 조선어의 탐구와 창안에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식민지적 조건 속에서 탈 식민지적 문화주의의 기획을 추구하는 작업이 온전히 조선의 ‘서정시’를 기초하는 일과 맞물리는 것이다. 식민지적 조건 속에서 조선어로 시를 쓴다는 의미는 이 점에서 한국문학사를 관통해 온 근대 서정시의 중요한 준거점에 해당한다. 개인의 내면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일 때, 정서와 사상의 미학화가 아직 그 성취를 보여주지 못한 상태일 때, 조선의 언어가 아직 미적 언어로서 그 실체를 갖고 있지 못할 때, 시창작의 의미는 동인지 ‘창조’나 ‘폐허’의 상징적 의미처럼, 모든 미적 실험, 생산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서정시에 대한 ‘반서정’은 ‘반시’ 혹은 ‘해체’나 ‘실험’의 성격에 기초하는 것으로 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과정을 돌아보면 ‘서정’은 그 자체가 지속적인 구축과 해체의 과정을 반복해 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서정의 지속적인 자기갱신이나 변화라는 관점에서 2000년대 이후의 새로운 시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런 맥락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서정은 이 점에서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시대적인 조건과 상황 속에서 하나의 대답의 형태로 주어지는 시의 ‘자기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직접적인 요건이라고 판단된다.
1920년대 자유시형과 조선시에 대한 실험이 형식, 언어, 내면 의식, 정서, 사상에서 식민지적 조건과 상황을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듯이, 새로운 미적 조선어의 창안과 시적 서정의 창안은 그 자체 탈식민지적인 주체의 대응과 서로 맞물리는 작업이다.
우리는 시를 살로 색이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는 우리 살과 피의 매침이다. 그럼으로 우리의 시는 시나는 거름에 슬적 읽어치워지기를 바라지 못하고, 우리의 시는 열 번 스무 번 되씹어 읽고 외여지기를 바랄 뿐, 가슴에 늣김이 이러나야만 한다. 한말로 우리의 시는 외여지기를 求한다. …… 민족의 言語가 발달의 어느 정도에 이르면 國語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안이하고 文學의 형태를 요구한다. 그리고그 文學의 成立은 그 민족의 言語를 완성식히는 일이다.2)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식민지 시기 자연서정시와 민족시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방향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어’의 정립이 단순한 일상어의 확립이 아니라 문화어 혹은 예술적인 언어의 성립에 준한다는 의식은 식민지 시기 시인들에게 일반적인 것이었고 이 점에서 ‘민족어의 조탁’을 내세운 시문학파의 주장이나 『문장』을 중심으로 한 정지용, 이태준 등의 언어미학주의는 문학적 정서, 사상, 언어의 문제를 ‘민족어의 완성’이라는 큰 지향점 아래에 두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식민지 시기 ‘민족어의 완성’이라는 문제가 문학어의 완성, 문학적 사상, 정서를 담을 수 있는 문학적 형식의 완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서정시의 정립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해방 이전 한국시의 전통을 ‘자연서정시’에서 찾게 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결국, 해방 이후 급변한 역사적 상황과 조건,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주체적 변화 등이 ‘자연 서정시’의 상황적 맥락을 변화시키기 이전까지 민족적 서정시의 완성이라는 목표는 줄곧 중심적인 테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快適하던 절간 생활도 몇 달이 안가서 처참하게 무너지게 되었다. 일본의 대륙 침략은 말기로 접어들어 민족문화를 말살하는 强力同化政策이 실시됨으로써 우리말은 교육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회화와 언론 출판에서까지 금지되기 시작했다. 東亞, 朝鮮 兩大新聞이 폐간되고 「文章」이 폐간되고 「人文評論」은 「國民文學」이라 개제하여 日本文雜誌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五臺山에서 「文章」 폐간호를 받고 울었다. 거기에는 <靜夜>라는 拙詩가 실려 있었다. 이 시는 推薦詩에 응모했던 작품인데 住所不明이 되어 연락이 안되어서 옛날의 원고뭉치에서 이것을 골라 실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무슨 종말을 예견하는 詩와도 같았다. 山中에도 감시의 눈이 뻗치고 고독과 침울과 憤恨에 젖는 정신은 毒酒만을 기울여 나는 마침내 다시 轉地療養이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3)
인용한 글은 조지훈의 회상적 고백 중 일부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청록파 3인에게 『문장』은 단순한 등단지면으로서의 의미를 초월해서 조선, 전통, 우리말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에 비교할 수 있는 듯하다. 실제로 『文章』이라는 제호와 문장의 미학을 강조하는 이태준의 성향, 가람 이병기의 복고취향, 고전부흥론과 전통주의 반근대적인 정신구조 등은 다분히 상상된 미학으로서의 ‘전통’일망정 이들이 ‘전통적인 미’와 ‘낭만적인 이로니’에 의한 대체물로서의 ‘예술’에 심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과학’으로서의 ‘합리성’이 파시즘 앞에서 몰락하는 상황에서 낭만적인 개인의 ‘미적 심취’가 오히려 파시즘에 대한 대항기제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뜻밖의 결과이다. 그러나 절대성의 상실, 분열된 세계 앞에서 좌초한 합리주의자 최재서에 견주어 보면, 이들에게는 ‘미적 신념’과 ‘전통’으로 그들의 상실을 대체하는 ‘낭만적 이로니(irony)’ 4)가 작용함으로써 현실의 상황에 대한 ‘격렬한 부정과 패배감’이라는 이중적(아이러니한) 상황속에서 특정한 ‘비전’을 창출하게 된다. 특히, 청록파 3인에게는 그것이 자연’, ‘전통’, ‘기독교적인 에덴’으로 각각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실부정으로서의 ‘반근대’와 그 현실에 대한 패배의 인정으로서의 ‘새로운 미학’의 창안(대체물로서의)이라는 ‘낭만적 이로니’의 작용은, 문장파를 포함해서 청록파 3인의 시인을 의식적인 반근대주의, 전통부흥론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근대적인 미학에 충실한 ‘창작가’라는 이중적인 존재로 만든다. 이미 상실되었다는 의미에서 이들의 전통이나 자연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가상의 세계, 미학의 세계, 내면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어, 전통, 조선은 1930년대 후반의 상황에서는 이미 패배한 가치들일 뿐이다. 이러한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시와 미학으로 ‘되살려내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그것이 현실적인 이데올로기나 실천적인 행위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잠재적인 ‘부정성’은 상상을 불허한다.
따라서, 청록파가 발견한 근대적인 자연, 전통은 이식문화로서의 일본식 근대, 신문명에 대해서 의식적인 반근대주의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청록파는 근대 초창기부터 일종의 담론체계로서 이식되어온 ‘동양’, ‘전통’이라는 이념을 ‘내면으로부터 극복한 미학적 성취’를 달성해 낸 것이다. 민족적 서정시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전통, 반근대, 근대, 저자는 이어서 「문장」지의 낭만적 이로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시적 비전은 아무리 현실부정의 요인을 머금고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그것이 이데올로기로 작용되지 않을 때 지극한 보수주의에로 유착된다. 또한 그들의 시적 비전이 진보(근대화)에 동조하지 않는 내적 필연성에 의해 돋아난 것이기에 근대적 개인의 숨은 음성의 어떤 부분을 대변할 수는 있고 나아가 전통의 상실을 포함한 의식적인 전통부흥자이며, 이 점에 한정하여 보면 그들은 반근대주의자로 규정된다.”
미학적인 내면 형성과정이 복잡하게 착종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자연서정시가 시단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보수화되는 과정은 ‘문학사적인 의미’에서 단순하게 처리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개발 독재의 시기에 자연 서정시가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담지한 시 형식으로 변질되고 고착화되는 과정은 식민지적 원점에서 시작된 문화적 민족주의의 시대착오적인 화석화 과정에 해당된다. 분단과 계층분화, 도시화, 산업화 등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 앞에서 자연서정시의 미적 이데올로기화는 ‘분화된 국가 내부의 모순과 문제’를 은폐하고 단일한 ‘민족 구성원’을 상상하는 복고적 미학주의로 변질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반시, 반서정, 반미학 등의 새로운 시적 주장은 근원적 반서정주의라기 보다는 보수적 미학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자연서정’, ‘민족어’, ‘전통주의’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1980년대 참여문학, 민족문학 계열의 시풍이 여전히 서정적 형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그 미학적 전복이 최종적으로 서정 그 자체보다는 ‘자연’과 ‘전통’, ‘민족’에 대한 허구적 지배이데올로기를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나타낸다.
80년대 이후 팽배한 반서정의 움직임은 이 점에서 개인의 내면이 하나의 ‘공통적 질서’아래 통합되기를 거부하면서 시작된 분열의 조짐을 지니고 있었다. 서정은 이제 거대 공동체의 단일한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권력, 자유와 해방 등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포용하기위한 자기 변신의 과정으로 이행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2. 무크지 운동과 80년대 서정시의 자기 갱신
1980년대는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라는 두 잡지가 폐간되고 보수적인 성향의 문예지만이 문단에 남게 되는 상황에서, 신인들을 중심으로 한 각종 군소 “동인지”와 무크지가 80년대 시의 한 방향을 이끌어 왔음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1920년대 동인지가 ‘문학’이라는 이념을 통해 ‘민족문화와 언어’의 재구축을 시도했다면, 80년대 무크지 운동은 ‘시와 삶’이라는 화두를 통해 변화한 한국사회의 ‘모순과 갈등’에 시가 직접적으로 다가서고 그것을 시로 표현하려고 한 또 다른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해방과 분단을 거쳐 80년대 광주를 겪은 80년
대 시인들에게 과거의 미학적 이데올로기나 보수적 이념을 대변하는 기존 시는 전혀 현실성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상도 현실성도 없는 ‘죽은 시’에 대한 반발 속에서 한국의 서정시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고 그 변화란 기존의 ‘서정시’를 부정하는 ‘서정시’, 즉 ‘반시’의 움직임이다. ‘순수문학’, ‘순수시’, ‘참여시’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시의 형식과 실천이라는 문제를 고민으로 안고 시작한 것이 바로 80년대의 서정시였다. 이 점에서 80년대의 시적 서정은 역사의식, 그리고 리얼리즘이라는 삶의 서정을 일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민중적 정서를 미학으로 상승시키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노동과 가난’을 시적 서정의 핵심적인 소재로 부각시키는 주요 동기가 되었다. 이런 점은
다음과 같은 동인지의 서문에도 잘 나타난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그래서 당대의 삶의 허상에 대한 책임마저도 지워져 있다고 할 수 있는 시인들조차도 이러한 기존 질서에 능동적 혹은 묵시적으로 흡수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중략)
오늘 우리는 일곱 번째 《反詩》를 펴내면서 지금까지 우리의 그 모든 주장을 종합적으로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으면서, 이제는 어쩌면 진부한 감조차 들기도 하는 <시인의 삶과 태도>의 문제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것은 이 시대가 너무나 우리의 이상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자세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갈등은 과연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중략)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학이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삶 자체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결코 우리의 삶과 무관할 수
없다는 확신과 아울러 일단 그것이 문자로서 발표되었을 때 對社會的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5)
시인의 대사회적 책무에 대한 의식이야말로 80년대 시적 서정과 표현의 핵심적인 특징을 규정하는 요건이다. 시적 자의식이 온통 시인의 대사회적 관계에 집중되면서 이상과 동떨어진 시대현실의 모순을 어떻게 시로 표현하는가하는 문제는 80년대 시의 핵심적인 화두가 된다. 즉, ‘반시’의 상징성은 ‘기존질서에 순응하는 시’, ‘제도권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에 대한 반성을 의미하는 데 있다. 기존질서에 대한 의혹은 ‘당대 삶의 허상’을 꿰뚫어 보고 그 모순을 정면으로 파헤쳐 가는 것이 시정신이라는 의미이고, 이 점에서 시는 하나의 규율로 정립된 ‘시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새로운 실천으로서의 시정신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80년대 서정시의 특징은 이 점에서 기존의 서정적 미학의 권위를 부정하고 적극적인 비판과 의혹을 통해 서정의 대상, 소재, 가치, 윤리를 재점검한 데 있다. 민중시 혹은 농민시이거나 도시적 일상의 허구성을 다룬시 등 80년대 시의 스펙트럼은 단일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근대적인 규율질서, 제도적 권력의 폭력과 허상에 대한 비판의식은 공통된 측면에 해당된다. 특히 역사의식과 개인 주체의 해방에 관한 시 의식은 90년대까지 지속적인 자기갱신을 거듭해 온 테마들이다.
“우리는 건강한 삶에 시적 기반을 두겠으며, 시의 서정성이 바탕색에 깔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6)라는 다짐처럼 80년대 시인들에게 ‘삶’이란 단순한 시적 소재이기 전에 연구의 대상이며 윤리적 준거점이 된다. 삶과 유리된 시는 근본적으로 관념 이상의 것이 아니므로 ‘서정’의 의미는 곧 삶에 밀착된 정서를 의미하는 것으로 재정리되는 것이다.
오렌지 쥬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러 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 다닌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면서
자, 차린다, 나는 뜻밖의 커피를 들며
돈을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賣春婦라 불러도 되겠다
黃金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주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權能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며 된다
그러면 賣淫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十字架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神의 오렌지 쥬스를 줄 것인가.7)
80년대 서정시의 다양한 경향과 표현에 대해서는 좀 더 다각적인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삶의 밀착’이라는 차원에서 일상적 체험에 대한 비판적 자의식의 등장은 중요한 변화 중 하나이다. 특히, 도시, 자본주의, 일상적 문화 속에서 생겨나는 비인간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한국 서정시를 형식 미학적인 완결성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과 발화라는 차원을 강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문명과 비인간화, 도구화에 대한 경각심을 내면화된 시선으로 포착하는 시들이 등장하는 데, 인용한 작품은 그 중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자판기’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습관적인 순응과 적응, 비인간화의 과정에 대한 무비판적 동화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는 위 작품은, 주변적 인 일상 속에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을 위협하는 적들이 숨어 있음을 폭로한다. 쾌락, 버튼을 누르는 간편성, 그 위에 욕망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거대권력이 존재함을 보여줌으로써 ‘만족’, ‘쾌감’에 길들여진 육체가 어떻게 도구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위 작품이다. 기존 서정시의 시적 동일화를 의도적으로 차단함으로서 알레고리와 풍자를 통해 ‘윤리적인 관점’을 도출해 낸다는 점에서 시적 몰입보다는 ‘차단’을 통해, 그럴듯하게 봉합된 현실의 모순과 균열지점을 간파하는 이런 시는 그 표현 면에서 ‘미적 완결성’을 지향하기보다는 ‘정신적인 각성이나 반성’, ‘의심’을 표면화한다. 또한 기존 서정시의 감성적인 어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특정 인물의 이야기나, 서사성을 도입함으로써, 일상적 주변의 현실과 생활을 시에 담으려는 시도도 나타나는데, 신경림의 『농무』시편은 정서적인 어조 등에서는 기존 서정시의 경향에서 큰 편차가 없는 듯하지만, 화자의 화법, 시적 서사 등에서는 구체적인 일상의 이야기를 시로 쓰는 중요한 변화점을보여준다.
재건학교 김선생님이 입대하던 날
아리랑 한 보루를 사다 드렸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사람의 사랑으로 다가와서
처음으로 사랑의 그림자에 귀를 기울이게 한
야간 천막학교 김선생님
15촉 흐린 불빛 아래 거적을 깔고
우리들은 처음으로 쓰레기가 아닌
우리들의 지난 날과 내일을 기억했다
마음의 긴 장대 끝에 깍지를 끼우고
선생님이 따주는 고향집의 익은 감과 별들이
우리들의 가슴에 들어와서 뜨겁고 신선한 그늘이 되었다 8)
곽재구의 인용한 시는 재건학교에서 야학을 가르치는 김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의 정서적 합일을 구축해낸다. 가족애의 확장, 농촌공동체적 정서의 재현, 가난한 민중적 연대 등을 정적인 화법을 통해 서정시로 표현한 ‘민중시’ 계열의 많은 작품은 기존 서정시가 현실로부터 괴리되어 ‘내면적 정서’의 미적 표현에 안주하고 있는 단점을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역사의식, 지배자 중심의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통한 역사적 상상력이 시 속에 도입되고 실제로 안도현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비롯해서 과거의 민중적 주인공을 ‘현재’로 소환하여 권력적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담론을 시로 표현하는 작품이 상당수 창작되었다.
농촌공동체의 해체와 도시 서민의 등장은 ‘가난’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시선을 부여 했고 이 과정에서 김명인의 『동두천』 같은 도시변 두리, 양공주 이야기 등 근대사의 질곡을 드러내는 현장을 시로 포착하면서 그 ‘비애’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80년대는 이 점에서 ‘삶에 밀착된 시’라는 하나의 방향 속에서 역사적, 사회적 상상력과 표현이 가장 극단적으로 확장되고 다양화된 시기였다.
서정적 동일성을 이끌어 내는 요소로 가족, 공동체, 타자에 대한 연민이라는 감성적 연대의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80년대 시가 봉착한 중요한 한 지점이 나, 우리, 그들이라는 ‘연대’를 매개로한 ‘나와 타자’의 구분이라고 한다면, 초기에는 주로 ‘민중’과 ‘지배자’로 이원화된 권력 구도 속에서 시적 상상력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이런 단순한 집단적 대립 구도는 ‘민중’내부의 균열점을 바라보는 형태로 좀 더 다양하게 전개된다. 시적 동일성의 한 차원을 집단적 공동체주의에서 확보하고 ‘권력’, ‘부패한 지배자’, ‘사회모순’을 공격하는 방식에서 ‘지식인과 민중’이라는 내적 균열의 아이러니를 점차 주목하게 된 것은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변화점이다.
너는 나보고 개새끼라고만 그러는 구나
몸파는 너를 보고 불쌍하다는 나를 보고 막무가내
불쌍히 여기는 그 못된 버릇을 버리라는구나
여자여 어두운 원주역 학성동 길
비 내린 가로수처럼 늘어섰던 여자여
여자여 거대한 미움의 응어리 속 가까울 수 없는 외딴 섬
질퍽이면서, 여자여, 그러나 내가 무슨 영혼주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대가 삶에 대해 지치고 아프고 설워 보일 때
우리가 미움과 위선과 교활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습기 찬 하숙집에서 돈에 대해
몸 팔음과 사랑의 가능성에 대하여
한 개인의 비극적인 생애에 매달려 있을 때
내가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는 것은
사랑은
전쟁처럼 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절망은 보다 억척스러운 꿈과 맞닿아 있기 때문
우리가 뇌세포 묻어나는
불안에도 지쳐 있을 때
우리가 고향집 풀밭 때묻은 치마폭에도
매달려 있을 힘이 없을 때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아름다움에 대해, 무기에 대하여
…………
너는 나더러 개새끼, 개새끼라고만 그러는 구나 9)
몸을 파는 ‘너’에 대한 나의 동정이 ‘불쌍히 여기는 못된 버릇’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그 동정이 ‘개새끼’라는 욕으로 돌아오는 현실은 ‘너’와 ‘나’의 넘어설 수 없는 어떤 거리에서 비롯된다.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그 ‘필연적 거리’, 그에 대한 질문에서 이 시의 문제성은 도출된다. 하숙집에서 사랑에 대해, 돈에 대해, 미움과 위선과 교활함에 대해 얘기할 때에도, 내가 진정 넘어설 수 없는 ‘절망’은, 단순한 동정으로는 개새끼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절망이 억척스러운 꿈과 닿아 결국 하나의 ‘연대’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역시 그 과정은 지난하고 어렵기만하다. 나의 ‘동정’과 너의 ‘개새끼’라는 말 사이에 존재하는 넘을 수 없는 격차를 고민하면서 80년대 시는 상상적인 ‘민중적 공동체’를 넘어서 실질적인 연대의 가능성과 현실의 분열상에 다시금 직면하게 된 것이다.
80년대 서정시의 행보는 ‘삶’의 실상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단순한 현상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구조와 관계,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는어떤 권력이나, 힘, 욕망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질적인 변신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이런 시선은 90년대적 주체의 내면화된 시선이나 자기 욕망에의 반성이라는 중요한 특징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3. 90년대 시, 세계와 나의 충돌 지점
90년대 서정시의 특징에 대해서는 원고의 분량 상으로도 전체를 상세히 거론할 수 없으므로 결론의 형식으로 대강의 특성을 요약할까 한다.
우선 80년대적인 ‘연대’의 힘이 80년대에 서정적 울림이 큰 시를 생산하게 했고, 그 결과는 80년대를 공동체적인 이상과 삶의 현실성에 대한 자각의 시대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90년대적인 일상과 욕망, 자본주의적인 물신주의의 등장 앞에서 80년대적인 연대와 공동체의 희망은 역설적인 회의감을 안겨준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라는 연대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개인의 욕망에 대하여, 그 분열에 대하여, 80년대 시는 애써 외면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90년대가혁명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상적 희망’, ‘정치적 낙관’으로 인한후폭풍을 불러왔다. ‘순박한 우리’와 ‘부정한 그들’의 문제로는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나’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그들’의 층위를 다시 돌아보는 과정에서 90년대 시가 봉착한 난관은, 우리가 상상한 ‘연대’가 또한 상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몸 파는 너’와 ‘동정하는 나’가 그 거리를 좁힐 수 없었듯이, 나라는 존재의 내면 속에 얼마나 많은 욕망과 균열이 존재 하는가 라는 의식에서부터 90년대 시는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90년대 시는 근원적으로 통합적이기보다는 ‘주체의 균열’과 ‘욕망의 분화’를 그 특징으로 한다.
서정시가 근본적으로 세계와의 소통을 전제로 한 양식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연대성’도, ‘총체적 세계관’도 상실한 90년대 시가 서정시로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은 극단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90년대 시가 내면의 심층을 파고 들어가거나, 균열된 언어의 상태를 과장하거나 폭로함으로써, 자기 파토스를 드러내는 경향으로 나아간 것은 우연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서정시의 정서가 페이소스나 우울, 권태, 비인간적 건조성을 폭로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아간 것은 한편으로는 90년대적 서정을 가장 반서정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기도 한다. 실제로 90년대적 정서에는 자기 내면적 욕망의 분출이나 좌절을 어떻게 세계와 충돌시키고 그 결과를 시로 표현하는가 하는 전략이 그 중심에 놓여 있었다.
유하가 “금지된 생의 집어등이여, 지하의 모든 나를 불러내다오/나는 사유의 야바위꾼, 구멍 난 영혼, 흠집 가득한 기억의 육체들을/별빛의 찬란함으로 팔아먹는 다네.”10)라고 했듯이, 90년대적인 시의 특성 중 하나는 ‘금지와 욕망’의 충돌 지점에서 빛나는 한 순간을 포착하여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의 ‘찰라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90년대 시에서 ‘전략’의 의미는 이 점에서 ‘실존’의 한 형식이었고, 시적 표현의 가장 극단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모든 표현이 빛나는 것은 ‘세계와 나’의 조우가 빚어낸 ‘한 순간’을 기록하기 때문이 아닌가.
2) 『후기』, 『시문학』 창간호, 1930. 3. 30쪽.
3) 조지훈, 『나의 시의 편력』, 『청록집이후』, 현암사, 1968.
4) “현실에의 패배를 다른 대치물로 극복하려는 의지이되, 그것이 현실에의 패배라는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태도, 그것이 낭만적 이로니이다.” (김윤식, 「문장」지의 세계관, 『한국근대문학사상비판』, 일지사, 1978. p.180.)
5) 『반시의 시인들-반시동인 작품집』, 문학세계사, 1982. pp. 3~4.
6) 시힘동인, 『그렇게 아프고 아름답다』의 서문 중에서
7) 최승호, 『자동판매기』, 『언어의 세계』 3, 청하, 1984. p. 36.
8) 곽재구, 『대인동 3』 중 일부, 『사평역에서』, 창작과비평사, 1983. p. 122.
9) 김정환, 『원주여자-아름다움에 대하여』, 신경림, 이시영 편, 『마침내 시인이여-17인 신작시집』, 창작과비평사, 1984. pp. 120~121.
김춘식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평론집 : 『불온한 정신』, 『역사의 폭풍』 연구서 : 『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 외
현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계간 『시와 표현』 2011년 가을호
* 주석의 1)과 10)의 내용이 빠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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