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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세상과 세상 사이

[스크랩] 나호열의 [가마우지 한 마리]

by 丹野 2013. 4. 9.

 

나호열의 [가마우지 한 마리]

                                       - 제주도 기행. 3

 

하늘을 날던 가마우지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뾰족한 부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무엇인가 내 것을 빼앗아 가는데도 노엽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깊이도 안 될 것 같은데

깊고 푸른 바다가 내게도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작은 생명들이 그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가마우지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마우지는 겨울 철새라고 한다

 

▶ 물아일체(物我一體)요, 물아일여(物我一如)이어니 이 시작품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상태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찌 한 마리의 [가마우지 한 마리]가 가마우지로만 보이리오? 자연 그 자체인‘하늘을 날던 가마우지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하여 한 인간과 한 자연이 일체를 이루었으니, 가마우지는 ‘나’의 분신이 된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하늘을 날던 가마우지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며, 가마우지의 ‘뾰족한 부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입니다. ‘가마우지’라는 자연과 나의 완전한 합일, 즉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더욱 오욕(五慾 :인간의 다섯가지 욕심인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으로 가득한 인간의 소유물인‘무엇인가 내 것을 빼앗아 가는데도 노엽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가마우지가 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온 것일까요?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람 또한 자연의 한 부분임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결코 자연을 초월하여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마우지가 인간의 가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물아일여의 마음가짐입니다. 즉 인간인‘나’는 ‘내 가슴’을 가마우지가 앉는 대자연인‘바다’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하거니와 ‘손가락 하나 깊이도 안 될 것 같은데 / 깊고 푸른 바다가 내게도 있었던 것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바다’가 되어진 ‘나도 모르는 작은 생명들이 그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을 인식하고 나니, 어느덧 [가마우지 한 마리]는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가마우지는 겨울 철새입니다. 가마우지는 제가 사는 동안 인간의 인식으로 하여금 인간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다가 가마우지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가‘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자연은 언제든지 자신이 할 바를 다 하고나서야 비로소 물러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가지는 질서정연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사람이 어떠한 새로운 것을 만든다 하여도 결코 자연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자연이 자연이게 하고, 자연이 가지는 자연의 바른 이치를 깨달아 이에 순종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변치 않는 것(國破山河在)’이라고, 두보(杜甫)의 [춘망(春望)]이란 시 한 구절이 떠오르는군요.(글 : 구재기)♥♥♣♣

 

▶ 나호열(1953 - ) : 1953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했다. 1986년 『월간문학』신인상 수상하면서 등단한 이후 1991년 『시와시학』중견 시인상, 2004년 녹색 시인상을 수상하였고, [미래시], [울림시], [강남시], [시우주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도사랑협의회 한국본부 회장, 『인터넷 문학신문』발행인이다. 시집으로는 『담쟁이 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찾기』『망각은 하얗다』『아무도 부르지않는 노래』『칼과 집』『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낙타에 관한 질문』등 다수가 있다.

출처 : 세상과 세상 사이
글쓴이 : 장자의 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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