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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한 호흡에 그리는 소나무의 기상 - 화가 문봉선

by 丹野 2013. 3. 11.

<TOP Class -  2013년 02월호> Culture & Living

 

 

[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문봉선

한 호흡에 그리는 소나무의 기상

 

 

“곧으면 곧은 대로 구부러지면 구부러진 대로, 우리나라 소나무만큼 아름다운 곡선, 형태를 가진 소나무가 없다. 누구 하나 돌보지 않아도 온갖 풍상을 겪으며 말없이 서 있는 노송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어쩌면 소나무야말로 우리나라의 풍토와 기후가 만들어낸 비대칭, 비정형, 비상식, 비표준 그리고 겸손, 인내, 당당함 등을 두루 겸비한 진정한 목신(木神)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봉선
1961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중국 난징예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8회의 개인전과 <매화꽃이 있는 정원>(2012, 환기미술관), <한라산과 일출봉>(2012, 제주도립미술관), <금강미술대전 초대작가전>(2011, 대전MBC)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1986년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회화 부문을 수상하고, 1987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같은 해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1987년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문인화 부문, 2002년 제16회 선미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새로 그린 매란국죽》(2006, 전2권, 학고재), 《문봉선》(2010, 열화당) 등 다수가 있다.

 

 

2013년 2월 17일까지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 문봉선 화백의 말이다. 소나무를 주제로 한 이 전시는 〈송운(松韻)〉이라는 작품으로 시작된다. 아침 안개처럼 솔향이 화면 가득 퍼져나간다. 가까이서 보면 메마른 붓질의 중첩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비로소 군집한 소나무들이 보인다. 소나무를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떠오른다. 그것은 나무의 생김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나무의 힘과 그 솔향을 함께 보는 것이다. 10m나 되는 다른 대형 화폭에는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기운차게 뻗어 하늘에 닿아 있다. 드라마틱한 소나무들의 모습은 잠시 이 그림이 흑백의 수묵화라는 것을 잊게 한다. 치솟은 소나무들의 강렬한 힘과 생동감 때문이다. 작품 제목에는 거창 수송대, 경주 오름, 양산 통도사, 경주 삼릉, 충북 보은, 경주 남산, 제주 대정향교의 해송, 석파정의 천세송 등 소나무를 사생한 장소가 표기되어 있다.
 
  문봉선이 처음 소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고등학생 때 강요배 선생에게 데생을 배웠는데, 그때 소나무의 ‘진(眞)’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고향인 제주 산천단의 수령 5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 곰솔을 그리고 또 그렸다. 1987년 소나무 그림으로 동아미술상을 탔으니 그와 소나무의 인연은 깊다고 할 수밖에. 또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문봉선의 소나무’들이 탄생했다. 당나라 때 이사훈의 〈강상누각도〉 이래 1000년이 넘게 소나무는 껍질은 거칠게, 솔방울은 삐죽삐죽하게 그리는 같은 방식으로 그려져왔다. 그러나 그가 그린 소나무는 달랐다. 큰 붓을 이용해서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강인함과 기상을 표현했다. 진한 먹의 느낌이 살아 있는 농묵으로 굵은 줄기를 그리고 마른 갈필로 솔잎을 그렸다. 마침내 “전통 내부의 혁신”을 해낸 것이다.
 
  “소나무의 진(眞)은 바로 즉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오랜 지필묵 수련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목신(木神)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소나무-경주 삼릉 송림(松林)_ 화선지에 수묵, 245×1000cm, 2012

 

작업 과정 자체가 감동적이다. 우선 큰 화선지를 꼼꼼히 이어 붙이는 데 2~3일이 걸린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하루 종일 먹을 갈면서 머릿속에서 구상이 이루어진다. 오랫동안 꼼꼼히 사생해온 것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소나무가 그의 내면으로 들어와서 느낌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당일 아침 시작해서 하루에 8시간을 넘게 집중해서 그린다. ‘일단일도’라고 두 장 그리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한 호흡에 그린다. 밑그림도 없고 수정도 불가능하다. 한 호흡으로 하루 만에 그리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우선 지필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정선・ 이인상 등 대가들의 그림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림 자체가 글씨를 쓰는 것과 같이 일필휘지로 그려진 것은 그가 서예인 초서를 능히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화일체의 문인화를 할 수 있는, 요즘 보기 드문 화가다. “소나무는 기상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기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소나무를 한 필로 그려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에 초서가 가미되니 화면에 공간미・조형미 같은 것이 표현되어 전통화지만 현대화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는 15년 동안 전각을 배웠다. 농담의 변화 없이도 공간을 구성하고 배치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전각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전통산수화, 서예, 전각까지 한데 어우러져 농익어 표현된 것이 지금의 문봉선의 소나무들이다.


 

                                           소나무-독야청청(獨也靑靑)_ 화선지에 수묵, 245×120cm, 2012

 

그는 지필묵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집안 전체가 글과 그림을 숭상했고, 어려서부터 서예와 한자를 배웠다. 남들이 국영수 공부하느라 정신없는 고등학생 때도 소암 현중화 선생에게서 글씨 쓰는 법을 배웠다. 젊은 시절 그의 재능을 알아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며 아꼈다. 이미 아마추어를 넘어선 솜씨를 가지고 홍익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니 막상 학교의 전공수업은 재미가 없었다. 대신 조각・미술사・서양화를 두루 공부했다. 이런 공부들은 모두 전통회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는 교수가 되고 여러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면서 유명 작가가 되었지만, 좋은 그림에 대한 목마름은 끝이 없었다. 2002년 그는 중국 난징으로 다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때 그의 스승은 중국 초서(草書)의 대가인 서리명(徐利明)이었다. 한편으로는 초서를 배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중국 석사학생들에게 사군자를 가르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21세기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전통에 대한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사실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경제적 지위가 상승할수록 그에 걸맞은 문화강국의 면모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에게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물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곰삭고 오래된 것, 무심결에 나오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저절로 담고 있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완벽이 아니라 그 자체로의 자연스러움을 고졸미라고 일컫는 바로 그것이다.”


 

            석파정 천세송(石坡亭 千歲松)_ 화선지에 수묵, 145x367cm, 2012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법고창신(法鼓昌信)’의 정신을 강조하는 그는 전통과 전통의 현대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놓치지 않고 작업을 해왔다. 긴 겨울 홀로 외롭지만, 먼 미래를 꿈꾼다는 의미의 전시 제목 〈독야청청 천세를 보다〉는 소나무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문봉선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한국미술계에서 전통화의 입지가 크게 줄었지만, 문봉선은 전통화의 방법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독보적인 화가다. 2012년만 하더라도 세 번의 대형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소나무・난초・매화 그림 등 매번 보여주는 그림들도 달랐다. 33세부터 북한산・설악산・지리산・섬진강 등 아름다운 우리 산천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풍광을 관찰하며 산수화를 그렸고, 그 과정에서 자연의 생태를 이해하게 되면서 사군자를 더욱 잘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쭉 살펴보니 매번 다른 주제를 들고 나온 전시들은 커다란 프로그램에 근거한 구체적인 행보들이다. 그의 가장 큰 궁극의 목표는 무엇일까.
 
  “궁극은 바로 우리 자연이다. 고산자 김정호처럼 백두대간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백두대간을 답사해서 100m 정도의 두루마리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환갑 전에는 오우가에 나오는 기물들을 모두 그려볼 것이다. 환갑이 넘으면 화려한 색을 사용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데, 고향 제주도의 자연을 담은 화려하면서도 격조 있는 색, 생명력 있는 색에 도전해보고 싶다. 자연과 사군자를 다 버리고 나면 나는 선禪으로 가고 싶다. 초서의 경지로 가고 싶다는 말이다. 이 경지로 가려면 사람, 자연의 모든 원리를 다 이해해야 한다.” 
 

            소나무-보름달_ 2012, 화선지에 수묵, 145×360cm, 2012

 

앞으로의 계획도 그림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거의 매일 그림을 그려왔다. 현재도 미래도 그의 삶은 온통 그림에 관한 것뿐이다. “특별한 재주도 없고, 특별한 취미도 없고, 그냥 지필묵하고 사는 그 자체가 늘 행복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당호는 독소당(獨笑堂)인데, ‘혼자 미소 짓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보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가 그리고 나서 미소 지은 그림들이 지금 전시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문봉선이 보여준 전통에 대한 깊은 사랑을 우리 모두가 함께하면 더욱 행복하지 않을까.

 

 

/ 이진숙  미술평론가

  사진 :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