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목소리
김경성
달이 차오르는 날이면 바다의 몸도 부풀어서
뻘밭을 가득히 물고 출렁거린다
나문재 물결도 사라지고
바다의 눈 속에서 출렁거리며 차오르는 달 만큼이나
배가 불러 있는 멧새의 집,
새들은 날아가고 동굴 같은 빈집에 늙은 거미가 다녀가셨다
쳐놓은 그물에 꽃이 핀 것처럼
달의 허물이 걸려 있다
사스락거리는 달의 소리를 실타래처럼 꼬아놓으면
수평선에 걸린 고래의 지느러미를 붙잡을 수 있을까
허리까지 차오른 저녁노을이 유난히 붉은 저녁이다
눈꺼풀만 남은 달이 뜨는 밤,
바닷물의 수위도 낮아지고 달의 허물도 사그라졌다
조금씩 너의 기억을 갉아먹고 있다
습자지처럼 얇아진 기억이 언젠가는 안개가 될 것이다
기억이 다시 부풀어서 둥글어진 달의 소리를 듣고 바다가 출렁거리면
기억의 행간을 뛰어넘은 갯바람이
새들의 둥근 방 근처까지 차오르고
돌아온 새들의 부리 끝에서 파도소리가 흘러나올 것이다
제 속을 다 파먹은 초승달, 겨울나무에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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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es - Stamatis Spanoudakis
출처 : 시베리아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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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조금씩 너의 기억을 갉아먹고 있다
습자지처럼 얇아진 기억이 언젠가는 안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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