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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좋은 나무, 나쁜 나무

by 丹野 2013. 1. 25.

 

 

 

 

 

좋은 나무, 나쁜 나무

 

 

이유미 /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첫눈도 내리고 했으니 이젠 겨울임에 틀림없다. 이즈음 산에 가면 눈에 잘 띄는 나무가 있다. 겨우살이다. 이름도 겨울에 사는 나무란다. 하지만 겨우살이가 겨울에만 사는 건 아니다. 1년 내내 푸른 잎을 달고 사는 상록성인 나무지만 다른 나무들이 모두 잎을 떨군 이맘때에야 비로소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산에 가면 큰 나무들의 높다란 가지 위에 새집처럼 둥글게 모여 달려있는 푸른 잎을 가진 식물들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겨우살이다. 이 나무에 붙여진 이름을 생각해보니 우리가 보는 관점에서 붙여준, 참 자기 중심적인 이름이다 싶다.

그 겨우살이가 요즈음 인기가 높다. 항암 성분이 있어 여러 사람의 암을 낫게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나서부터다. 서양 겨우살이는 이미 항암제로 증명됐고, 우리 겨우살이는 얼마나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실험하고 알아보고 있는 단계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불치병에서 고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준 이 나무는 그 하나의 미덕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한지 모른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겨우살이는 반기생성 식물이며, 기주(寄主)가 되는 참나무나 서어나무 등에 기생근을 박고 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니 애써 만든 양분을 겨우살이에게 내주는 기주 나무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약한 식물인 것이다. 겨우살이가 기생이 아닌 반기생인 것은 초록색 잎을 가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광합성을 해 양분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연구자가 혹시 언제나 양분을 빼앗기던 기주 식물이 양분을 공급할 형편이 되지 못하면 거꾸로 겨우살이가 만든 양분을 기주에 주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말라죽을 때까지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정말 기주 나무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 존재다. 겨우살이는 좋은 나무인가, 나쁜 나무인가?

유명한 아까시나무도 그렇다. 가장 미움을 받은 나무 중의 하나인데, 무성한 가시에 찔리고, 그 무성하게 뻗는 뿌리에 조상의 묘가 위협받는 입장에서 보면 참 나쁜 나무다. 더욱이 우리 나무들이 잘 살고 있어야 할 땅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일제 시대에 이러한 조림이 이뤄졌으니 우리 국민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아까시나무는 세계에서 꿀값이 가장 비싸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무다. 수많은 양봉업자들에겐 생계가 달린 일이다. 게다가 알고 보면 척박해 다른 나무들은 정착하기 어려운 땅에 빨리 뿌리 박고 자라 토양을 좋게 한다. 그리고 우리 숲을 푸르게 하는 공신의 하나다. 게다가 잎들은 가축의 사료가 될 뿐 아니라 제대로 자란 줄기는 가시가 없어지고 통직해져 좋은 목재로 이용할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시나무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많을 것이다.

얼마 전 언론에 침엽수 숲에서 한 일부 조사 결과가 호흡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흡수량보다 많다는 조사 결과가 알려져 작은 논란이 있었다. 잠시 그럴 수 있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나무들은 산소를 배출하고 이산화탄소를 소모하므로 궁극적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우리의 환경은 전적으로 나무들의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무를 포함한 초록 식물 덕택인 것이다. 자칫 이러한 절대적인 가치에 혼란을 주는, 검증없이 선정적인 보도가 나간 것은 나무의 입장에서 그리고 이 나무들을 평생 연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나쁜 나무로 비칠 수 있는 것은 억울하고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무뿐 아니라 풀도 그러하다. 토양을 좋게 하고, 토끼에겐 먹이가 되고, 아이들에겐 반지며 목걸이가 돼 주며, 그 누군가에겐 행운의 네잎 클로버가 되기도 하는 토끼풀도 잔디밭에선 그저 뽑아버려야 할 잡초에 불과하다. 하긴 밀밭에선 보리도 쓸모없는 잡초가 아니겠는가.

이 무궁하고 방대한 자연에서 우리가 보고, 짐작한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을 ‘좋은 나무’ ‘나쁜 나무’로 가르고 그에 따라 베어라 심어라, 좋다 싫다가 결정되는 일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의 결과인지 모르겠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편가르기는 더욱 심한 것 같다. 어떻게 나와 생각이 좀 다른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일까? 얼마 전에 자신의 책이 가장 훌륭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모든 학자를 엉터리로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알고 보면 다른 것은 일부에 불과한 일이고 다른 것을 볼 수 있어야 같은 것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전체를 다 알고 있는 진정한 현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한없이 경솔한 판단과 집요한 행동이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김으로써 아름다워야 할 우리의 세상은 각박하고 힘들어지는 듯싶다.

한 해의 끝은 아직도 조금 남아 있다. 자신을 돌아보고, 왜곡된 시선과 편가르기로 소외된 그 무엇이 우리 주변에 있는지 살펴보면서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나도 오늘 이 시간부터 시작해 보련다.

 

 

출처 / 세상과 세상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