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까지 독도에 산골하고 / 나호열
쓸데없는 일에 목숨 거는 일처럼
허망한 일이 어디 있으랴
한참 일할 나이에
아니 한참 생의 즐거움을 맛볼 나이에
힘도 없으면서
빽도 없으면서
그들은 왜 독도를 지키자고 목청을 높였는가
그러다가 왜 정말로 목숨을 버려야만 했는가
그러나 쓸데없다고 다들 외면하는 일에
목숨 거는 일처럼
위대한 일은 없다
정치가나 사업가나 학자들 보다
쓸데없는 일에 청춘을 불사르고
목매다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밝아졌다는 것을
두꺼운 역사책 어느 구석에도 이름 없는
그들 때문에
세상이 맑아졌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바람이 되어
구름이 되어
이 세상에 가득한 이들이여
독도에 가면 모두가 새가 된다고
영혼까지 독도에 묻은 두 사람이여
*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하고'는 편부경 시인의 산문 제목이다. 2001년 5월 27일 독도수호대 총회를 마치고 귀경하던 김제의 이미향 두 사람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은 짤막하게 보도된 바 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독도에 산골하고 그들은 영원한 독도 지킴이가 되었다. 그들의 사연은 편부경 시인의 산문으로 상세히 남아 있다.
*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하고' 는 또한 독도 사화집의 책명이기도 하다. 이생진, 편부경, 오정방(재미시인), 고대진(재미시인), 박정순(재 카나다 시인)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 명의 시와 산문을 수록했다. 8월 29일 오후4시부터 6시까지 남산 문학의 집 서울에서 출판기념회와 더불어 김명회 박사(한국학술연구원)를 모시고 강연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독도를 통하여 국토사랑, 나라사랑의 의미를 다같이 되새겨 보자는 의도이다. 많은 분들의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린다.
그에게 쓰는 편지 / 나호열
-독도에게
귀소본능을 잃어버린 도시의 비둘기처럼
우울하게 회색빛 하늘을 맴도는 편지가 있다
그는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기다리는데
거센 바람 때문이라고
길을 찾지 못했다고
후두둑 굵은 빗줄기가 한 차례 쏟아진다
지상에 닿기도 전에
더러운 눈물이 되어 버리는 편지는
복개된 미래를 향하여 쏜살같이 사라진다
너는 외롭다
너는 높고
너는 쓸쓸하다
백지위에 다시 나는
너의 이름을 적는다
너의 주소는 언제나
텅 빈 나의 가슴이다
수평선을 넘어가다 / 나호열
그리움이 담장을 넘고
넝쿨 장미가 담장을 넘고
담장은 마음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득하게 달아나버린 수평선
한 발자국씩 다가서면
그만큼 뒤로 물러서는 수평선
그만큼 넓어지는 바다가
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다
파도가 무엇인가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끼룩거리는 갈매기가 날갯짓이 들린다
바다를 가진 사람만이 그 소리를 듣는다
두 개의 섬이
어딘가에 있다
내 마음 속에 떠올랐다가
몸을 숨긴다
등대불이 깜박인다
독도 1 / 나호열
-동해 일출
너를 사랑했다.
너무나 멀어 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너는 있었다
바람은 거세고
바다는 깊었다
내가 살 수 없는 너의 가슴은
절벽뿐이었다
너에게 가지 않기로 했다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
그 눈부신 햇빛 속에서
수많은 갈매기들이 부화하고 있었다
그 경전을 읽어내는 한 평생도
자랑스러울 것 같았다
혼자 바다를 건너는 해와 달이다
독도 2 / 나호열
-후포에서
어느 곳에서라도
동해의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그 어느 곳에서라도
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비바람 불어 뱃길 끊기고
물오징어 한 접시
소주 한 병에 몸을 덥혀도
칼날처럼 다가서는 이 파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나는 안다
사납게 객창을 두드리는 바람
그 손길이 누구의 외로움인줄
나는 안다
단숨에 달려 나가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물어보아야 할 길이라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라
대화퇴에서 돌아오는 어선의 눈빛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독도 3 / 나호열
-갈매기
어디에 사십니까?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이 어리석은 질문에
선문답하듯
동해바다 갈매기는
훌쩍 수평선을 넘어간다
독도 4 / 나호열
-무능도원
학교도 없습니다
병원도 없습니다
교회도 없고, 절도 없습니다
물론 수도시설도 없고
시장도 없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없는 것이 많아서
무능도원 입니다.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아침 저녁
애국가 우렁차게 울려 퍼집니다
밤이면 등대불이 한국말로
껌뻑껌뻑 합니다
독도 5 / 나호열
-사랑합니다
네가 없다면 동해는
바다가 아니다
네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동방의 해 뜨는 나라가 아니다
열 발자국만 나가면
수 천 길 깊은 물 속
그 가운데 그렇게 우뚝 선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어느 마을 초입의 정겨운 두 사람처럼
서로를 마주 보며
견우직녀처럼 그리움의 키를 높이면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다 닳도록
만세다
우리나라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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