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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욕망

by 丹野 2011. 12. 9.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욕망

 

 

  라캉(Jacques Lacan;1901~1981) : 파리의 유복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1919년 의과대학에 다녔으나 철학, 문학, 초현실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조르쥬 바타이유, 클로스포스키 등과 교류하였다. 1932년 의학박사 학위논문인 "인성과 관련된 편집증적 정신이상"을 출판하였으며 이때부터 정신분석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36년에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거울단계'를 발표하였으며, 1968년 학생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있어서 기본입장

 

라캉 : 언어학을 모형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재정립

즉, 프로이트가 개인의 역사에 중점을 두고 탈정치화의 한계를 드러내었다고 한다면 정치적 문제와 함께 개인적 문제의 해결을 통한 인간 해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프랑스 68 학생혁명과 함께 독일에서는 마르쿠제, 프롬 등이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학의 통합을 모색하였다. 이런 사회환경 속에서 라캉의 이론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연결하는 새로운 사고틀로서 프로이트가 결여하고 있던 철학적, 인간학적 측면을 보완하는 것으로써 20세기 후반 지식인 세계에 폭넓은 주목을 끌었고 또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라캉은 정신분석 이론과 구조주의 언어학의 이론이 유비적(analogical)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언어학적 개념을 정신분석학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 적용

 

프로이트가 어둠에 잠겨있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무의식'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반면 라캉은 무의식이 하나의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어 이해 가능하고 설명 가능하다고 파악 했다. 즉,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어린 아이의 사회화과정과 연관시켜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와 라캉의 공통점과 차이를 보자면 정신분석은 꿈 혹은 정신병 등에서 왜곡되어 나타난 무의식의 의미를 언어로 드러내거나, 인간의 일상적 행동과 언어 속에서 작용하는 무의식적 잔재를 추적하는 것이란 점에서 자연(본능, 리비도)과 문화(사회, 규범)의 접점 속에서 그것들을 연결하는 역할 수행. 라캉은 프로이트에게 중요한 심적 에너지 혹은 리비도라는 자연주의적 가설을 거부하고 있으나, 정신분석학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 즉, 문화는 '본능의 억압'이라는 관점에 있어서 프로이트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라캉은 문화 자체보다 문화를 구성하는 언어에 집중. 따라서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로 번역가능하다'고 본다.

 

실재계(le reel) : 경험의 대상을 구성하는 세계 전체로 생물학적 욕구와 외적 사물로 구성되며 상징화되기 이전의 세계의미,

인간이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는 불가능의 세계 표현

 

상상계(거울단계) : 6~18개월의 어린 아이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다른 사람으로 알다가 점점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통해 아이는 '조각난 몸'(le corps moecele)의 환상을 갖지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영상과 자아를 동일시(상상적 자기동일성)하는 순간 조각난 몸의 환상이 가져온 고뇌에서 벗어나 '신체의 통일적 형태'(gestalt)를 파악 : 만족감과 자아도취의 감정 획득하지만 자기도취의 상태는 근본적으로 자기소외 수반

인간의 자아의식의 허구성, 기만성 노출

 

상징계(아버지의 이름) : 어린이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넘어가면서 언어를 획득하게 되고 상상계로부터 분리

이 상징계로의 진입을 통해 진정한 자기동일성으로 변형가능(언어의 주체가 되는 것이 본질적으로 인간이 되는 것)

실재계와 상상계를 억압함으로써 욕망의 끊임없는 순환 야기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는 인성발달의 단계에 상응하면서도 개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세 종류의 질서이다.

 

2. 욕망

 

라캉은 출생으로 인해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태아는 어머니를 상실했다는 불유쾌한 경험 즉 어머니와 한 몸이었으나 출산으로 어머니 몸으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최초의 좌절 경험하고 근원적 결핍감을 갖게 된다-욕망의 근원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기 이전의 욕구는 만족되었으므로 우리는 어머니와 분리되기 이전에 느낀 평화롭고 목가적인 상태를 기억하며 욕구

그러나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본질적 특성을 갖기 위해 상상계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로고스(언어, 이성)을 가진 동물로서의 인간은 상상계로부터 벗어나 상징계로 진입해야 비로소 인간답게 된다. 즉, 어쩔 수 없이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생물학적인 남성의 기관으로서 페니스(음경)를 상징적 의미의 팔루스(Phallus; 남근)란 상징적 언어로 대체시켜 프로이트의 전통을 발전하는 한편 그것을 뛰어넘고 있다.

 

프로이트가 외디프스 콤플렉스에서 말하는 '음경선호'(penis envy)에 대해 라캉은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남근은 허구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아니다. 또한 남근은 그 자체로 현실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대상도 아니다. 남근이 남성 성기나 음핵같은 신체기관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진실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는 바 팔루스는 신체기관인 페니스가 아니라 곧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팔루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 즉, 남성 중심 사회의 법, 곧 근친상간을 금지하고 아버지에 의한 거세를 두렵게 생각하는 사회적 질서를 의미하므로 생물학적 결정론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팔루스는 권위, 권력, 질서를 상징하는 한편 상실, 결여, 욕망을 상징하는데 어린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이러한 '결여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언어로 사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린 아이가 무엇인가 결여되었거나 상실된 사물의 개념을 가져야 비로소 파악될 수 있다.

 

인간의 욕망(desir)은 매우 불안정하고 모순적이어서 구체적 현실 속에서 충족될 수 있는 욕구(besoin)와는 다르다. 욕구는 생물학적 필요를 말하며 식욕, 성욕의 충족처럼 특정 대상과 목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의 달성을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욕구의 충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잔여물이 있고 그것이 욕망의 형태로 남는다.

 

배고픈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만으로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욕구는 대부분의 경우 요구(demande)의 형태로 나타난다. 라캉에 의하면 요구는 특정한 대상으로 만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데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그러하다. 사랑에 대한 요구는 타자가 만족시켜 줄 것을 기대하지만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은 이것을 만족시켜 줄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결핍감이 욕망을 구성한다.

 

따라서 라캉은 "욕망은 순수한 결핍이 갖는 힘"이라고 한다. "욕망은 만족을 위한 욕구도 사랑에 대한 요구도 아닌, 요구에서 욕구를 뺀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동시에 양자 분열의 현상 그 자체이다."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랑의 요구는 서로의 요구를 완전히 채워주기는커녕 오히려 주체를 욕망의 회로 속으로 몰아넣는다."

 

3. 자크 라캉의 시각예술 분석

 

'반복'(repetation)의 어원은 '지치게 하고 소모시킨다'는 의미의 끌어당긴다인데 실재계와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발생하는 주체의 분열이 반복의 토대이다.

분석이란 경험에서 발견되는 주된 특징은 분열이며, 이 분열의 변증법적 효과 속에서 실재계가 파악된다.

시선과 응시, 시각의 영역에 충동(drive)이 나타나는 곳은 바로 시선과 응시의 분열

응시(gaze) : 사물과의 관계가 시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재현의 여러 형태들로 배열될 때 무엇인가 빠져나가고 사라지고 단계별로 전달되며 숨겨져 드러나지 않는 것-모방을 통해 응시를 이해할 수 있다.

세계는 모든 것을 바라보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계는 우리에게 응시를 촉발시키지 않는다. 세계가 응시를 촉발시키는 그 순간 생소함(strangeness) 역시 시작된다. 이 말은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응시가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응시가 볼 뿐만 아니라 '보여준다'는 사실도 사라져 버린다. 반면 꿈의 영역에서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응시가 보여준다'는 점이다.

 

시각의 영역이 욕망의 영역에 연관될 때 비로소 욕망의 기능 속에서 응시가 갖게 되는 특권이 이해될 수 있다.

 

라캉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이란 작품에서 주체의 소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두 외교관이 서 있고, 그 사이에 있는책상 위에는 당대과학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그런데 그 밑에 길쭉하게 누워있는 것은 정면에서 볼 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으나 몸을 왼쪽으로 옮기며 돌아나가려다 힐끗 보면 그것이 해골임을 알게 된다. 평면시각으로 볼 수 없는 물체, 공간과 욕망이 개입되어야 드러나는 이 물체는 그 위에 놓여진 과학의 상징물들을 허영이라고 비웃는 듯 하다.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기억의 고집> 역시 이 공간개념을 최대한으로 끌어들인다. 우리가 평면적인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단순한 시선(eye)을 넘어서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각은 보기만 하는 시선(eye)이 아니라 보여짐(gaze)이 함께 하는 중첩적인 것이다. 보여짐을 강조하는 것이 라캉의 욕망의 주체이다. 상상계 못지 않게 상징계를 강조하듯 그의 보여짐, 즉 '응시'가 대상을 허구화시키는 욕망의 동인(오브제 a)임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장영란 외 지음,『성과 사랑 그리고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 서광사, 1999.

자크 라캉,『욕망이론』, 권택영 엮음, 문예출판사, 1995.

 

출처 / 인터넷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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