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홍련
*아라홍련이 운다 / 김경성
깊은 잠 들었던 시간이 해체되어 더는, 꿈꿀 수 없다
키 작은, 키 큰 풀뿌리가
촉수를 내 심장에 대고
그대의 말을 전해주었다
나는 그 빛을 마시며 떨림을
읽었던 것, 그리워했던 것
누가
나의 몸을 열고
심장 없는 꽃으로 피어나게 했는가
그대는 백련으로 피고 나는 홍련으로 피어나서
꽃 그림자 섞으며 농밀했던
그 여름,
느티나무의 몸 그림자 내려놓은 먼발치에서
서로의 숨으로 잘 영근 사랑,
늪속에서 긴 잠 들었다가
천 년 후에 다시 꽃이 되기로 했었던 것을
몸과 마음이 무르익는
천 년이 될 때쯤에야
그대 앞에서 다시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음을
재생 시킬 수 없는 기억까지 되돌려놓은
칠백년,
서늘한 시간이여
아직도 긴 잠에 들어 있는 아라백련,
천 년의 사랑이 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목간(木簡)이 출토된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사적 67호)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여년만에 꽃을 피웠다.
계간 『 열린시학』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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