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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는 ‘육지’의 가장자리임이 분명한데도 ‘바다’가 그 공간의 정체성을 독점한다.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곳을 가리키는 ‘해안’이라는 말에서도 바다가 주체의 자리에 놓인다. 흔히 사람들은 분명히 두 발을 육지를 두고서도 바닷가를 혹은 해변을 걷는다고 말한다.
바닷가, 해안, 해변 같은 말을 떠올리면 육지를 등지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외로움과 호연, 동경과 도전, 체념과 안도, 희열과 비애, 초조함과 느긋함이 혼재돼 있다. 물론 마음자리의 형편에 따라서 상반된 두 감정의 부피가 달라지지만, 어느 한쪽이 압도적이지는 않다.
동해를 바라볼 때와 서해를 바라볼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동해에서는 아스라한 벼랑보다도 바다의 존재감이 더 가파르다. 서해는 그렇지 않다. 동해의 이미지가 단호하다면 서해는 서성거린다. 나는 그런 서해의 이미지가 좋다. 사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서해는 ‘저 잘난 멋에 사는’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난 삶을 위로한다. 아니, 옹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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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의 본질을 일러주는 갯벌의 일몰. 이 저녁이 곧 내일 아침!(장화리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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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이미지는 갯벌에서 비롯된다. 갯벌을 빼고 서해를 말할 수 없다. 바다도 아니고 온전히 육지도 아니지만, 새벽 혹은 저녁 어스름에 낮과 밤의 기운이 함께 서려 있듯, 바다이면서 육지고 육지면서 바다인 곳. 갯벌은 그런 곳이다.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드럽다.
갯벌. 말 그대로 바다와 벌이 함께 있는 곳이다. 제3의 땅이자 제3의 바다이다. 이것이면서 저것이고 저것이면서 이것이다. 갯벌은 금을 긋듯이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둘이 함께 있다는 것을 밀물과 썰물로써 증명해 보인다. 사실 바닷가가 땅의 끝은 아니다. 대륙붕이라는 이름으로 수십 킬로미터나 바다 속으로 뻗어 있다. 빙하가 그렇듯이. 다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육지와 바다를 가른다.
갯벌은 세계의 실상에 대한 은유
갯벌은 세계의 실상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낮과 밤, 밝음과 어둠, 빛과 그늘, 선과 악의 공존. 이것이 세계의 실상이다. 밀물과 썰물처럼 끊임없는 반복과 변화. 이것이 세계의 존재 방식이다.
갯벌은 완충지대다. 바다로 드는 강물에 포함된 온갖 오염 물질과 영양염료를 거르고 분해하여 바다의 부영양화를 막는다. 태풍이 몰아쳐 바다가 들고 일어날 때도 육지에 가해지는 충격을 먼저 흡수한다. 홍수로 강물이 난폭해질 때도 부드럽게 끌어안는다.
갯벌은 중도와 중용의 미덕을 상징한다. 밀물의 열정과 썰물의 냉정 사이의 ‘균형’, 육지와 바다 사이의 ‘거리두기’에서 갯벌의 중도가 탄생한다. 그것은 50:50의 조합이 아니다. 이쪽저쪽이 끝없이 밀고 당기면서, 때로는 주춤거리고 서성이면서 생겨나는 숨 쉴 공간이다. 그 틈에서 대륙을 건너온 철새들이 날개를 접고 온갖 생명들이 숨바꼭질 같은 사랑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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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도와 동검도 사이의 갯벌은 이제 칠면초의 땅으로 바뀌어 장관을 이룬다. 한편 이 모습은 갯벌로의 삶이 다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몇 년 전까지도 이곳으로 물이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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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중도 같은 건 없다. 있다면 그것은 한 순간일 뿐이다. 중도는 휘청거리며 서 있는 대나무의 탄력 같은 것이다. 기계적 중립으로서의 중도는 정치적 수사이거나 기만적 처세술이기 쉽다. 그것은 과도한 확신만큼이나 위험한 함정이다.
과학적 근거라고는 거의 없는 얘기가 되겠지만, 만약 이혼을 앞둔 부부가 마지막 화해의 기회를 갖기 위해 동해로 여행을 떠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이다. 바위 벼랑과 파도의 그 단호한 부딪침을 보면서 오히려 이혼의 결심을 단단하게 하지 않을까. 한 가닥 미련이라도 남아 있다면 서해 갯벌 앞에서 바다와 육지의 사랑 놀음을 볼 일이다.
그 고집스럽지 않은 사랑 앞에서 내 사랑의 가난함마저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사랑 앞에서 조금 주춤거리고 서성거리면 안 되는 걸까. 사람이든 자연이든 존재의 방식은 관계일 터인데, 조금은 쭈뼛거리고 수줍어하면서 다가서면 안 되는 걸까. 갯벌을 사이에 둔 바다와 육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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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갯벌의 지문. 어떤 빼어난 예술가도 갯벌의 조형미를 넘보지 못할 것이다.(선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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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임진강을 만나 서해에 이르기까지 물길은 ‘조강(祖江)’으로도 불린다. 모든 강의 ‘할아비 강’이라는 말이겠다. 한강이라는 이름과 의미가 통하되 훨씬 인간적이라 하겠다. 어쨌든 이 할아비 강은 서해로 들면서 한 줄기는 염하(?河)로 빠지고, 한 줄기는 내쳐 서쪽으로 흘러들어 예성강을 품에 안고는 강화도 북단을 지나 교동도를 어루만지면서 경기만으로 흘러든다. 그런데 조강의 한 줄기가 흘러드는 ‘염하’는 실제로는 바닷물길이면서도 ‘강[河]’으로 불린다. 굳이 우리말로 풀자면 ‘짠 내’ 정도가 되겠는데, 그 내력을 알고 보면 실로 절묘한 이름이라 하겠다. 지질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본디 강화도는 김포반도와 붙어 있었는데 염하 물길로 침식당하여 섬이 되었다 한다. 바다이지만 강 같은 물길이라는 얘기다.
생태적, 심미적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갯벌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로 육지와 연결된 강화도는 거리감으로는 거의 섬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엄연히 섬이다. 당연히 염하 때문이다. 또한 염하는 강화도를 비극적 역사의 고장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고려 원종 11년(1232) 몽골군의 침입을 당한 고려가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것도 염하의 거친 물살이 천연의 요새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려 조정은 뱃길을 통해 삼남의 미곡을 공급받는 데도 그리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여겼을 터이니 천도지로서 이만한 데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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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의 간척사업은 고려 때부터 시작했으니 800여 년 전부터의 일이다. 하지만 갯벌을 제방 앞으로 또 갯벌을 만들며 성장해 나간다.(가천의과대학에서 본 선두리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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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13세기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왜구의 등쌀에 조운의 통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식량 사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강화도는 본격적인 간척이 시작된다. 고려 말에는 강화도 해안의 거의 모든 포구가 간척되었다. 특히 염하 서쪽 해변 즉 강화도 동쪽 해안의 포구는 대부분 군량미를 조달하는 둔전으로 간척되었다.
한편 강화 해안 전역에 걸쳐 53개의 돈대(감시초소)가 설치되고 돈대와 돈대를 연결하는 성벽은 제방의 구실을 함으로써 간척은 더욱 용이해졌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갯벌이 다져짐으로써 적이 쉽게 염하를 건너 강화를 무너뜨리게 했다. 이것이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강화를 내준 결정적 원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강화 해안의 넓은 개펄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이상 강화 개펄에 얽힌 역사 지리학적 내력은 <국토와 민족생활사(최영준 지음, 민음사)>를 참고]
딱딱한 얘기가 조금 길었다. 하지만 강화도에 서린 비운의 역사를 배경에 깔지 않으면 갯벌의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그것은 한 마디로 ‘생명력’이다. 강화 갯벌은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을 거두어 낸 이타적 생명력의 꼭짓점에 서 있다. 또한 그 생명력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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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갯고랑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둔 나뭇가지들. 가히 삶의 예술이라 부를 만하다.(선두리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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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거의 모든 해안선은 간척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도 아직 강화도에는 갯벌이 많다. 강화갯벌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요 습지의 10.45%, 경기도 전체 갯벌의 20%라 한다. 초지대교에서 남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황산도, 동검도, 선두리 포구, 동막 해수욕장을 지나 장화리에 이르는 남쪽 해안의 갯벌은 아직도 생태적, 심미적 아름다움으로 충만하다. 그 갯벌은 사람에게 몸을 다 내주고서 새로이 성장한 것들이다.
바다이면서 육지이고 육지이면서 바다
황산도 앞 갯벌에 새겨진 곡선과 갯골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초가지붕의 곡선, 남녘 산들의 첩첩 산마루, 구비 도는 강물, 늙은 어부의 주름이 거기에 다 있다.
황산도를 지나 동검도를 잇는 다리를 건너면서 자주색으로 물든 칠면초를 만난다. 초록의 갈대밭 너머로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다. 장관이라고 느끼면서도 아차 싶다. 칠면초의 아름다움은 갯벌이 초원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영종대교 공사로 물 흐름이 방해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검리 앞으로는 드넓은 갯벌이 싱싱하다. 영종대교의 넘치는 자신감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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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썰물의 갯벌은 안온하다. 갯고랑에 기대어 낮잠 자는 고깃배. 천하태평. 이제 곧 밀물이 오면 고깃배의 아랫도리도 팽팽해질 것이다.(황산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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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머리 위에 솟은 때의 선두리 포구. 썰물의 갯골에 기대어 졸고 있는 작은 고깃배들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다. 졸졸 물길을 따라 갈매기들이 하나도 바쁠 것 없다는 투로 게으른 사냥을 하고 있다. 갯골 가로 뱃길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둔 나뭇가지가 이채롭다. 달빛에 의지하여 새벽바다로 나가는 어부의 발걸음처럼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내 눈에는 알듯 말듯 한 설치미술보다 더 예술적으로 보인다.
물때에 찾은 동막 해수욕장. 미세한 물이랑마다 햇빛이 와글거린다. 일몰 시간에 맞추어 간 장화리 갯벌. 아침처럼 저녁이 오고 있다. 내일 아침 이 바다는 지금 이 저녁처럼 다가올 것이다.
동해가 태양의 이미지를 닮았다면 서해는 달의 이미지를 닮았다. 태양은 스스로 빛나지만,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비춘다. 그래서 달빛은 은근하고 때론 수줍다. 모름지기 남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것들은 저 달빛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바다와 육지 사이, 바다이면서 육지이고 육지이면서 바다인 갯벌이 넌지시 일러주는 바다.
월간산/ 글 윤제학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ㆍ동화작가 사진 정정현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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