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꿈 / 나호열
오늘도 느릿느릿 걸었다
느릿느릿 뛰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었다
성급하게 인생을 걸었던 사랑은
온몸을 부벼댈 수 밖에 없었던
세월 앞에 무릎을 꺾었고
나에게는 어차피 도달해야 할
집이 없다
나는 요가 수행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잠을 집어 넣는다
언제나 노숙자인 채로
나는 꿈을 꾼다
내 집이 2인용 슬리핑 백이었으면 좋겠다
Mozart - Violin Concerto No. 5
in A major, K 219 'Turkish' : I ~ III
모차르트 /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A 장조,K 219 '터키풍으로’
Mozart - Violin Concerto No. 5 in A major, K 219 'Turkish'
절벽 / 나호열
절벽을 뛰어내리는 일과
절벽을 기어 오르는 일이
어느 것이 더 힘든 일인지 모르지만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리면 삶은 순간에 끝나고
기를 쓰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삶은
오래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담쟁이나 나팔꽃같은 넝쿨들이 아름다워 보이는것은
그들이 올라가야할 벽을 의식하는 한
그들은 항상 하늘을 우러러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은 조용히 썩어가야 하는
밀알이 되어야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푸른 하늘을 경배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약속 / 나호열
먼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다시 먼 길을 돌아가라고 말 하는 대신
나는 그의 신발에 입맞춤하겠네
힘든 오르막 길이었으니
가는 길은 쉬엄쉬엄 내리막 길이라고
손 흔들어 주겠네
지키지 못할 것이기에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기에
약속은 사전에 있는 것이네
그대가 왔던 길을 내가 갈 수는 없으니
돌아가는 것도 그대의 수고라고 말 한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그래도 보일락 말락 그만큼 거리에서
그대에게 할 말이 있네
들릴락 말락
꽃이 피었네
낙타에 관한 질문 / 나호열
낙타를 보면 슬프다
사막을 건너가며
입 안 가득 피 흘리며
거친 풀을 먹는다는 것이
사막에서 태어나서
사막에서 죽는다는 것이
며칠이고 사막을 건너가며
제 몸 속에 무거운 물을 지고
목마름을 이기는 것이
낙타를 보면 못 생겨서 슬프고
등 위로 솟은 혹을 보면 슬프다
낙타가 나를 본다
낙타가 이상한 낙타를 보고 웃는다
내장된 그리움으로
삶의 사막을 건너가는 것이
얼마나 기쁘냐
갈증을 견뎌내는
오아시스를 향한 눈빛이
얼마나 맑으냐
그래서 나는
낙타의 낙타가 되었다
사랑한다 / 나호열
누가 처음 그 말을 가르쳐 주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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