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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나호열 / 달팽이의 꿈 外

by 丹野 2011. 7. 21.

 

 

달팽이의 꿈 / 나호열

 

오늘도 느릿느릿 걸었다
느릿느릿 뛰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었다
성급하게 인생을 걸었던 사랑은
온몸을 부벼댈 수 밖에 없었던
세월 앞에 무릎을 꺾었고
나에게는 어차피 도달해야 할
집이 없다
나는 요가 수행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잠을 집어 넣는다
언제나 노숙자인 채로
나는 꿈을 꾼다
내 집이 2인용 슬리핑 백이었으면 좋겠다

 

 


Mozart - Violin Concerto No. 5
in A major, K 219 'Turkish'
: I ~ III

 

 

모차르트 /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A 장조,K 219 '터키풍으로’ 
Mozart - Violin Concerto No. 5  in A major, K 219 'Turkish' 
 

 

 

 절벽  / 나호열

 

 

  절벽을 뛰어내리는 일과
  절벽을 기어 오르는 일이

  어느 것이 더 힘든 일인지 모르지만
  눈 질끈 감고 뛰어내리면 삶은 순간에 끝나고
  기를 쓰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삶은
  오래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담쟁이나 나팔꽃같은 넝쿨들이 아름다워 보이는것은
  그들이 올라가야할 벽을 의식하는 한
  그들은 항상 하늘을 우러러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은 조용히 썩어가야 하는
  밀알이 되어야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푸른 하늘을 경배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약속 / 나호열

 

 

먼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다시 먼 길을 돌아가라고 말 하는 대신

나는 그의 신발에 입맞춤하겠네

힘든 오르막 길이었으니

가는 길은 쉬엄쉬엄 내리막 길이라고

손 흔들어 주겠네

지키지 못할 것이기에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기에

약속은 사전에 있는 것이네

그대가 왔던 길을 내가 갈 수는 없으니

돌아가는 것도 그대의 수고라고 말 한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그래도 보일락 말락 그만큼 거리에서

그대에게 할 말이 있네

들릴락 말락

꽃이 피었네

 

 

 

 

낙타에 관한 질문 / 나호열

 

 

낙타를 보면 슬프다
사막을 건너가며 
입 안 가득 피 흘리며
거친 풀을 먹는다는 것이
사막에서 태어나서
사막에서 죽는다는 것이
며칠이고 사막을 건너가며
제 몸 속에 무거운 물을 지고
목마름을 이기는 것이
낙타를 보면 못 생겨서 슬프고
등 위로 솟은 혹을 보면 슬프다
낙타가 나를 본다
낙타가 이상한 낙타를 보고 웃는다
내장된 그리움으로
삶의 사막을 건너가는 것이
얼마나 기쁘냐
갈증을 견뎌내는 
오아시스를 향한 눈빛이
얼마나 맑으냐

그래서 나는
낙타의 낙타가 되었다

 

 

 

사랑한다 / 나호열

 

 

누가 처음 그 말을 가르쳐 주었을까
나는 누구에게 그 말을 처음으로 전해 주었을까
어둡고 습기찬 곳으로
무릎을 꺾고 허리를 구부려야 보이는
낮은 사람들 사이에
한 알의 씨앗을 소중히 심듯이
그날에, 눈물은 한없이 맑아져 갔던가
누가 처음 그 말을 가르쳐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에게 처음으로 그 말을 전해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회오리바람 몰아치는 높은 나무 가지
둥지를 남겨두고 떠나버린 새는
어디에 있는지
바람에 귀를 씻고
침묵으로 눈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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