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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나호열 / 사랑해요 外

by 丹野 201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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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 나호열

 

 

 

당신이 듣고 싶은 말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멀리 있네

 

단 하나의 침으로 허공을 겨누고

 

밤하늘 별들이 파랗게 돋아났으나

 

꿀벌은 지상으로 떨어져 내려

 

이제는 슬픔도 늙어 가슴을 잃었네

 

 

   

우두커니 한 사람 정류장에 서 있으나

 

버스는 오지 않는다

 

 

   

걸어라

 

빙하기의 지층 속으로

 

죽고 썩어 발화를 기다리는

 

석탄의 하늘을 향해

 

걷고 걸어라

 

 

   

그 말이 그립다

 

살아 있다고 파닥거리는

 

날갯짓

 

영혼 속에 손을 넣으면

 

아득하게 물컹거리는

 

그 말

 

그 말의 체온

 

 

 

- 시집 『 눈물이 시킨 일』 시학시인선 2011

 

 

 

 독과 약, 또는 독약 / 나호열

 

 나란히 있다

 아니 서로를 서로 속에 감추며

 독도 약이 될 수 있는지

 약도 독이 될 수 있는지

 치사랑을 가늠할 수 없다

 

 저 붉은 사과

 나는 금단의 붉음과

 둥금을 입맛 다시며

 절대절명의 순간을 겨누고 있다

 

 저 원융 圓融 속에 이빨이 박히는 순간

 찌르르 내 생을 가르며 지나갈

 독이 든 사과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다.

  

 

- 시집 『 눈물이 시킨 일』 시학시인선 2011

 


 눈빛으로 말하다 / 나호열

 

 

떠나보지 않은 사람에게

 

기다려 보지 않은 사람에게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잔뜩 움켜쥐었다가

 

제 풀에 놓아버린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

 

독약 같은 그리움은 찾아오지 않는다

 

 

달빛을 담아 봉한 항아리를 

 

가슴에 묻어 놓고

 

평생 말문을 닫은 사람

 

눈빛으로 보고

 

눈빛으로 듣는다

 

그리움은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꽃

 

 

그저 멀기만 하다

 

멀어서 기쁘다


 

 

- 시집 『 눈물이 시킨 일』 시학시인선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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