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나호열 / 저어새의 다리

by 丹野 2011. 5. 23.

 

저어새의 다리 / 나호열

 

다리를 건널 때

강물에 깊이 발목을 묻은 다리의 다리를 바라보네

무릎 꿇고 팔 들고 벌서던 어느 날

허공조차 무거운 것임을 알았는데

하마 발목을 간질이며 흘러가는 강물도 그와 같지 않으랴

무던히 걸었던 나의 다리도 이제는 어디쯤 발목을 묻어

누구의 피안과 차안을 이어줄 것인가

눈을 감고 한 다리를 들면

캄캄하게 세상은 무너져 모로 기우뚱 쓰러지고 만다

눈을 감고 다른 다리를 들어보면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 몸은 평형을 잃는다

두 다리가 이어준 기우뚱거리는 세상과 직립의 내 몸

어디쯤에서 꺽꺽 울음이 돋는다

철새라고 핍박을 받으면서 쫓겨다니면서

스스로 유폐당하며 멸종되어가는 저어새

가늘고 긴 한 다리를 깃에 품고

한 다리로 세상을 딛고 설핏 잠에 든 모습이

오늘은 이 세상 어느 길고 높은 다리보다 장엄하구나

눈물겹구나

 

 

 

 

 

 

 

2245

'나호열 시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호열 / 사랑해요 外  (0) 2011.06.03
나호열 / 번개의 죽음  (0) 2011.06.02
나호열 / 큰 바보  (0) 2011.05.13
수행 修行 / 나호열  (0) 2011.05.11
나호열 / 바람으로 달려가   (0) 2011.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