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 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메
-이매창/ 한글시조-
익산에서 정읍을 향해 가는 길이다. 가는 길 도중 부안을 스쳐가며 일정에 스스로 변명의 꺼리를 만들고자 한다. 내소사 귀신사 금산사 등 관심사에 따라 절집만 두루 섭렵한 터라 이번에는 색깔을 달리해 보는 것이다.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매창의 슬픈 사연이 담겨있는 곳, 여인의 향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억지위로를 하며 찾아든 곳이 매창詩碑가 있는 부안이다. 굳이 꼽자면 매창은 황진이, 허난설현과 함께 조선의 삼대 여류시인이다.
매창은 1573년 부안현리의 서녀로 태어났다. 아마 매창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머니가 기생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러나 어떤 사연인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생은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삶이란 것이 가냘프고 한스럽고 애절하고 서글프다. 그의 시는 힘없이 가느다란 울림이며, 자신의 처지에 지친 한계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어두운 그늘 속에서도 맑은 향을 피우고 있으며, 또한 그의 시에는 가슴에 맺힌 그리움의 대명사처럼 절망에 지친 문장이 가득 차 있다. 나는 이제 37세의 젊은 나이에 병마와 외로움에 생을 살다가간 매창의 시비가 있는 곳을 찾아 오른다.
이매창의 시비는 부안군청 뒤 상소산 서림공원 산책길 초입에 있다. 화려한 군청사를 두고 증축공사가 한창인지라 굉음의 혼란 속에 매창의 애절한 싯구절을 떠올리기 힘이 든다. 습기 녹녹한 공원 입구 귀퉁이 어두운 그늘 속에 슬프게도 서있다. 겨우내 떨어졌던 낙엽들이 썩어 이리저리 어지럽고, 잡풀 어지러이 얼기설기 메마른 가슴이 된다. 아늑한 풍경을 기대했던 내 마음에는 황량함이 밀려든다. 습기인지 이끼인지 때 묻어 쌓인 시간만큼 어둡고, 시간에 따라 그런 것이라 위로해 보지만 한 낮에도 한 줄기 빛이 들지 않는 곳이라 매창이 살아생전 그늘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 같아 가는 빛이 그립다. 군청사의 증축공사소리가 더 얄미워지는데 과녁을 명중하는 활터의 소리마저 거슬린다. 어느 여인의 향기가 그리운데, 이것은 아니었는데.......
아름다운 곡선과 가냘프고 섬세하게 조각된 시비를 연상했었지만 기대가 큰 탓인가, 울퉁불퉁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삼단의 기단에 직사각의 대리석 안쪽으로 U자형의 홈을 파고 조성해 놓았다. 크기만 작다 뿐이지 어느 방향에서 보나 대칭이 되는 충혼 위령탑이나, 험난한 전쟁을 치룬 당당한 장군의 비석처럼 보인다.
매창의 대표적인 한글시조를 사각의 흑석에 음각을 해 놓았다. 어줍은 시각으로 보자하니 약간의 여유분도 공간도 여백의 아름다움도 분할미와 조형미도 없다. 몸과는 달리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며, 감히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살다가간 서정적 여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리라, 매창이 만들어내는 거문고나 가야금소리를 상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급조한 느낌에 정성까지 못다 한 느낌이다. 다분히 장똘뱅이 시각이니 조금이라도 관계되시는 분께 죄송하지만 흥분하지 마시라. 요즈음 기계로 잘 다듬어 빼어난 아름다움도 있더라만, 그를 기리는 비란 그의 정신세계와 인간적 삶의 정신을 표현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 다분히 나의 시각이다. 처음 마주하는 순간 감탄사가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볼수록 정겹고, 세월을 거슬러 그를 상상하며 추억하는 삶의 진정성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것을. 매창이나 장똘뱅이나.......
하여튼 나는 나의 욕심이니 고집을 부리며 마주 앉았다. 그리고 주절주절 떠올렸다. 사랑, 정겹게 보듬어 주던 눈길, 외로움, 헤어짐, 회한, 허무한 삶, 가냘픈 서정, 애절한 침묵과 긴 여운, 말년의 병마, 고된 삶에 대한 메마른 눈물, 한 점 혈육도 없이 38세의 나이에 사라져간 여인, 가무와 탄금, 정절, 유희경, 허균 .
말은 못하였어도 너무나 그리워
하룻밤 밤 그늘에 귀밑머리 희었어요.
소첩의 맘고생 알고 싶으시다면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구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 년 동안의 꿈같은 시간을 마감하고 의병활동을 위해 떠난 후 몇 년 뒤에 쓴 유희경을 향한 시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리워 밤을 하얗게 보내다 생긴 흰 머리칼, 메마른 손가락에 사랑의 정표 가락지가 헐렁해진 만큼이나 힘겹게 보냈을 매창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원망과 애정 어린 투정, 이토록 절절한데 뭐하시느라 여적인가, 빨리 돌아와 그리워 지친 마음과 몸을 보듬어 주길 간절히 원하는 여인의 모습이 자꾸만 머리에 그려진다.
이렇게 궁상떨다 홀로 캔맥주 홀짝이며 가슴을 적신다. 매창의 무덤이 아니라 기념하는 詩碑이니 한 잔 권할 수도 없음을 아쉬워한다. 마주한 공간만큼 어지럽고 감히 나 같은 사내에게 눈길 한 번 줄 매창이 아니니 멀찍이 떨어져 다행이다. 치근거리다 뿌리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멋모르고 달려들다 피박 쓴 적이 한 두 번이었던가! 그렇지만 시집을 펼치고 다시 한 수 읽어 내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멋을 아는 사내. 멋은 모르지만 술병은 들었는데...
가을빛 무르익어 온 들이 곱습니다.
강가를 거닐다가 정자 위에 오르니,
어디서 멋 아는 사내 술병 들고 옵니다.
四野秋光好, 獨登江上臺.
風流何處客, 携酒訪余來.. ― 江臺卽事
매창梅窓은 그의 호이다. 본명은 향금香今, 자는 천향天香, 계유년 태생이므로 계생癸生ㆍ桂生이라고 불렸다.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40중반의 유희경을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비록 유희경은 천민 출신이나 상례에 특히 밝았다. 국상이나 사대부가의 상喪에 집례 하는 것으로 이름이 났으며, 또한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니 당대의 인물이라 전부터 서로에게 마음에 끌림이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로가 마음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후 해후를 하고 시詩로써 화답을 나누다 마음이 통하고 몸도 통하는 것이 이치이다. 그러나 이 년 이란 꿈같은 세월이 흐르고 회자정리 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비록 천민출신이라 하지만 의병활동을 위해 유희경은 매창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으니 그리운 마음이야 그토록 절절했던 것이다.
이후 매창이 살았던 부안에서『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의 인연은 그와 약간은 달랐다. 자유로운 성을 추구해 왔던 허균인지라 한번쯤 품을 만 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빼어난 미모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매창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거부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조선의 싸움꾼 이귀李貴의 정인이었다는 소문 때문에 몸을 낮춘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구태여 몸을 섞어야 정을 주는 것은 아니요, 마음과 서로의 학문과 인성에 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매창의 나이가 28세요, 허균의 나이가 32세이니 서로가 무르익었으리라. 허균은 말년을 부안에서 보내고자 했으나 능지처참 당했으니 당연히 꿈을 이루지 못했다.
매창은 1610년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와 동고동락했던 거문고와 함께 묻히니 이루지 못한 한과 함께 묻힌 것이다. 부안읍 외서리에 매창의 묘가 있다. 그러나 매창의 시비로써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예전에 마을의 나뭇꾼들이 서로 벌초를 해오며 무덤을 돌보았다고 한다. 또한 가극단이나 유랑극단이 부안 읍내에 들어와 공연을 할 때에도 그들은 먼저 매창의 무덤을 찾고 한바탕 굿을 벌이며 시인을 기렸다고 하니 외롭지는 않았겠다. 나 같은 장똘뱅이를 반겨줄리 없으니 내공을 더 쌓은 후에야 다시 한 번 찾아 올 것이나 그때는 술 잔 나눌 수 있으려나?
섭섭한 마음에 매창의 시 몇 편 옮겨 싣는다.
*
어젯밤 내린 비에 버들 푸른빛,
매화는 벙글어
흰빛 고와라.
그러나 어이 하리, 이 좋은 시절,
잔 올려 님 보내는
아린 가슴을.
東風一夜雨, 柳與梅爭春.
對此最難堪, 木尊前惜別人. ― 自恨
*
삼월달 봄보람에 꽃잎은 지는데,
강남땅의 내 님은
돌아올 줄 모르시네.
애끊는
사랑의 노래,
거문고(綠綺)도 흐느끼네.
東風三月時, 處處落花飛.
綠綺相思曲, 江南人未歸. ― 春思
*
풍진 세상 고해에는 시비도 많다.
깊은 규방 긴 밤이 천년만 같구려
덧없이 지는 해에 머리를 돌려보니
구름 속 첩첩 청산 눈 앞은 가리네
이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지은 절명시이다. 풍진 세상을 살았으니 말들도 많았고, 홀로 그리워 지샌 밤이 천만년의 세월과 같았으니, 그의 죽음 앞에서 구름 속 청산이니 메마른 눈물이 가슴에 한 없이 흐르는 듯 세월의 회한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가 죽은 후 45년 후(1655)에 그의 무덤 앞에 비석이 세워졌고, 그로부터 다시 13년 후에 그가 지은 수 백편의 시들 중 고을 사람들에 의해 전해 외던 시 58편을 부안 고을 아전들이 모아 목판에 새겨 <매창집>을 개암사에서 간행하였다. 시집이 나오자 하도 사람들이 이 시집을 찍어달라고 하여 개암사의 재원이 바닥나기도 했다고 전한다.
뒤를 돌아 내려오는 길, 자꾸만 뒤꼭지가 땡긴다.답사 때 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400년을 뛰어 넘어 아쉬울 것도 없는 상대에게 홀로 돌아서는 대상없는 슬픔이 있을까. 다 가늠해 보지못한 미련함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향기찾아 오른 길에 잔가지만 무성한데
헐거워진 금가락지 거문고에 애끊가 끊고
아서라 뉘라서 님의 사랑을 사칭하는가
(20100323)
*
哀桂娘(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허균
妙句土甚擒錦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淸歌解駐雲 맑은 노래는 머문 구름도 풀어 헤치네
兪桃來下界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藥去人群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燈暗芙蓉帳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香殘翡翠裙 비취색 치마엔 향내 아직 남아있는데
明年小挑發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誰過薛濤墳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으리.
*참고자료/ 매창『매창시집』허경진 역. 평민사
/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
*
음악은 지니님께서 올리신 것입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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