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장인의 ‘한땀한땀’ 수제품의 매력
주간경향 | 입력 2011.05.19 14:17
ㆍ신발, 양복, 화장품까지…개성 좇는 소비 유행 없어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손으로 뜬 수제품." 한동안 유행했던 드라마 속 대사다. 드라마 속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주변엔 실제로 장인이 한땀 한땀 손으로 뜬 수제명품들이 있다. 대량생산과 광고, 디자인 트렌드를 좇아 급변하는 소비시장에서 수제명품들은 대개 유행을 타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치 않는 모습이다.
수제명품 중 꼽을 수 있는 첫 번째가 신발. 한때 장안의 한량들이 다 신었다는 80년 가까이 된 신발가게는 지금도 영업 중이다. 을지로 3가 송림제화.
↑ 가죽의자
↑ 을지로 3가에서 3대째 수제화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임명현 사장.
↑ 가죽지갑(왼쪽), 명동에서 가죽공방을 운영하는 김채두 사장이 작업을 하고 있다.
1936년 처음 문을 연 이 가게는 시대를 넘어 번창하고 있다. 일반 구두부터 골프화, 등산화, 특수화까지 신발이란 신발은 모두 만든다. 그것도 일일이 발을 재고 석고로 발모양을 떠서 가죽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는 수작업으로 신발을 만든다. 얼핏 시대에 뒤떨어져 망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손님은 더 늘었다. 여기저기 소문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다. 예전엔 40대 이후 손님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20대도 많이 찾는다. 신발은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 완성되는데, 공산품에는 그 대화가 빠져 있다." 3대째 사장인 현 사장 임명현씨의 이야기다.
기성품 보급 속에서 명맥 이어
처음 신사화를 만들다 한국전쟁 이후 등산화를 만들기 시작해 한때 등산화로 유명세를 탔었다. 산악인 허영호씨가 송림제화의 신발을 신고 북극과 남극 탐험에 성공한 후 유명해졌다. 한때 티롤화가 유행하면서 모 방송국 PD들이 단체로 송림제화 제품을 맞춰 신었던 일도 화제가 됐다. 현장을 뛰어다니는데 그만큼 편한 신발이 없었다는 평이었다. 디자인을 우선하면 신발에 발을 맞춰야 하지만, 발에 신발을 맞춰야 편하고 오래 신는다는 것이 송림제화의 신발철학이다.
송림제화만큼 역사는 오래지 않아도 또 다른 수제명품 신발가게는 미아리고개의 알퐁소. 이곳은 주로 등산화를 만든다. 한때 도봉산 등산객의 절반 이상이 알퐁소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전설의 제품이다. 1978년 문을 연 이래 경영권의 대를 물려주면서 지금은 수제 등산화보다 수입 아웃도어 제품 매장이 더 커졌다. 알퐁소 신발뿐 아니라 수입 등산화가 더 많이 팔린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처음 제품의 빛이 사라졌다는 애용자들의 불만도 간간이 들린다.
수제명품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양복이다. 명동, 소공동 일대는 한때 양복점의 거리였다. 지금은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소수의 양복점만이 체면을 지키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공장 생산 기성품에 밀린 결과다.
30년 동안 명동을 지켜온 헤밀턴양복점 서재필 사장의 이야기는 쇠락을 실감케 한다. "이제는 50대 이상, 예전에 양복을 맞춰 입어본 손님들만 찾아온다. 기성품과 다른 비싼 원단과 함께 손으로 재단하고 바느질하기 때문에 고가의 가격도 영향이 있다. 하지만 한 번 입어보면 몸에 맞아 편하고 옷맵시도 기성복은 따라갈 수 없다."
수제양복의 특징도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에 맞는 옷을 만든다는 것이다. 자부심은 대단하다. 몇몇 수제양복점들은 본거지 명동 일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션 중심지 강남 일대에 진출하고, 연회복과 예식양복 등 분야를 개척하면서 명맥을 살려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수제양복의 선택은 낮은 가격을 내세워 기성복과 한판 전쟁을 벌이는 일이다. 주로 직장인 밀집지역에서 출장 맞춤 등으로 기성복이 따라올 수 없는 전략을 펼친다. 양복 한 벌을 맞추면 바지 한 벌을 끼워주거나, 셔츠를 함께 맞춰주는 보너스 공세도 펼친다. 그래도 가격은 기성복 수준이니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반기성품의 옷을 수공으로 마무리하는 절충식 수제양복도 등장했다. 그러나 전통 수제양복을 고수하는 기성 양복점에서는 탐탁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최근 수제명품은 상용제품이 아닌 개인 수제제작 부분에서 힘을 얻는다. 세상에 둘도 없는 명품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 유행이다. 최근 4~5년간 소규모 가죽공방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전국에 대략 잡아 300여곳 정도가 문을 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늘어갈 전망이다. 공방뿐 아니라 각종 동호회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가죽 제작 모임이 늘고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드는 가죽공방 유행
4년 전부터 명동에 문을 연 가죽공방 채드킨의 김채두 사장은 사람들이 가죽에 매력을 갖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죽은 계속 쓰면서 멋스러워진다.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만든 이의 개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날수록 명품이 된다. 가죽을 선택하고 실과 장식을 고르는 일부터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비롯해 IT소품들의 소지가 늘면서 상용 케이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수요도 반영되고 있다.
대개의 가죽공방들은 제품 생산·판매와 함께 교육도 겸한다. 반나절 시간을 투자하면 동전지갑이나 명함집 등 자신이 만든 가죽 소품을 가질 수 있고, 하루 정도 정성을 쏟으면 에르메스풍의 고급 제품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기쁨도 누린다.
"가죽제품을 만드는 유행이 급속히 늘고 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만들 수 있고, 주변에 선물해도 좋은 평을 얻는다. 무엇보다 가죽을 만들면서 고도의 집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한다." 다른 직업을 가졌다가 가죽이 좋아 결국 가죽공방을 창업한 펠리즈 공방 김재영 대표의 말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미감이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나이나 직업을 떠나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수제 가죽제품 만들기의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인터넷 동호회에는 이밖에도 직접 만든 수제 화장품, 비누 등이 유행하고 있다. 을지로 방산시장 일대는 수제비누와 화장품 재료를 파는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10대에서 60대까지 나이를 잊은 손님들이 화장품 용기부터 향료, 천연재료를 고르느라 분주하다.
대량생산과 기계화를 통해 좋은 제품을 쉽게 쓸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자신에게 꼭 맞는 제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기성품 시대에도 수제화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손으로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만들어 쓰는 이도 늘고 있다. 모두가 같은 상표의 대열에 서서 만족하는 시대에 자신만의 개성을 좇는 수제명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김천 < 자유기고가 >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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