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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소멸에 관한 몇 가지 기록 / 김경성

by 丹野 2019. 8. 12.



 

 

 

소멸에 관한 몇 가지 기록 / 김경성

 

 

 

검정 꼬리 깃털이 유난히 길었던 수탉이 있었다

깃털이란 깃털을 모두 세우고 눈을 치켜뜨며 달려들어도

흙담 아래 앉아서 봉숭아꽃을 찧었다

칸나처럼, 혀에 돌기가 선 것처럼 붉은 닭벼슬만 보였었다

 

밥물이 흘러내려서 부뚜막을 적시고 밥 냄새를 맡고 사는 부지깽이는 싹이 돋으려는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생솔가지 아궁이에 밀어 넣으면 송진냄새가 방안까지 스며들었다

 

오래된 팽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제 그늘을 바라보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고, 밤이면 은하수를 타고 내려온 별들이 팽나무에 알을 슬어놓았다, 늦가을 팽나무에 올라가면 가지마다 노랗게 익은 별의 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별을 먹었을까,

시침질 끝내지 못한 별들이 뱃속에서 싸그락 거렸다

칸나꽃 목 꺾는 여름이었다, 흙담을 돌아나갈 때

뜨겁게 흘러내리는

첫, 몸이 열리는

 

수탉의 벼슬 같은 칸나 꽃잎이 다리를 타고 떨어졌다, 흘러내렸다

내가 삼켰던 별자리가 마당에 그려져 있었다, 밤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서 은하수를 타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 첫, 몸을 열고 나온

 

별의 눈

 

 

 

 


 - 계간 『 시인시각』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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