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터닝 포인트 by Steve Richard
내가 화살이라면 / 문정희
내가 화살이라면
오직 과녁을 향해
허공을 날고 있는 화살이기를
일찍이 시위를 떠났지만
전율의 순간이 오기 직전
과녁의 키는 더 높이 자라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팽팽한 허공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금빛 별을 품은 화살촉을 달고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고독의 혈관으로
불꽃을 뚫는 장미이기를
숨 쉬는 한 떨기 육신이기를
길을 알고 가는 이 아무도 없는 길
길을 잃은 자만이 찾을 수 있는
그 길을 지금 날고 있기를
커피 가는 시간 / 문정희
아직도 쓸데없는 것만 사랑하고 있어요
가령 노래라든가 그리움 같은 것
상처와 빗방울을
그리고 가을을 사랑하고 있어요 어머니
아직도 시를 쓰고 있어요
밥보다 시커먼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몇 권의 책을 끼고 잠들며
직업보다 떠돌기를 더 좋아하고 있어요
바람 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
홀로 가는 별과 사막을
미친 폭풍우를 사랑하고 있어요
전쟁터나 하수구에 돈이 있다는 것쯤 알긴 하지만
그래서 친구 중엔 도회로 떠나
하수구에 손을 넣고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단 한 구절의 성경도
단 한소절의 반야심경도 못 외는 사람들이
성자처럼 흰옷을 입고
땅 파며 살고 있는 고향 같은 나라를 그리며
오늘도 마른 흙을 갈고 있어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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