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by 丹野 2011. 4. 2.

 

 

 

 

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터닝 포인트
  by Steve Richard
  

 

 

 

내가 화살이라면  / 문정희 

 

내가 화살이라면

오직 과녁을 향해

허공을 날고 있는 화살이기를

 

일찍이 시위를 떠났지만

전율의 순간이 오기 직전

과녁의 키는 더 높이 자라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팽팽한 허공 한가운데를

눈부시게 날고 있음이 전부이기를

 

금빛 별을 품은 화살촉을 달고

내가 만약 화살이라면

고독의 혈관으로

불꽃을 뚫는 장미이기를

숨 쉬는 한 떨기 육신이기를

 

길을 알고 가는 이 아무도 없는 길

길을 잃은 자만이 찾을 수 있는

그 길을 지금 날고 있기를

 

 

 

 

 

 

 

 

커피 가는 시간 / 문정희

 

 

아직도 쓸데없는 것만 사랑하고 있어요

가령 노래라든가 그리움 같은 것

상처와 빗방울을

그리고 가을을 사랑하고 있어요 어머니

 

아직도 시를 쓰고 있어요

밥보다 시커먼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몇 권의 책을 끼고 잠들며

직업보다 떠돌기를 더 좋아하고 있어요

 

바람 속에 서 있는 소나무와

홀로 가는 별과 사막을

미친 폭풍우를 사랑하고 있어요

전쟁터나 하수구에 돈이 있다는 것쯤 알긴 하지만

 

그래서 친구 중엔 도회로 떠나

하수구에 손을 넣고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단 한 구절의 성경도

단 한소절의 반야심경도 못 외는 사람들이

성자처럼 흰옷을 입고

땅 파며 살고 있는 고향 같은 나라를 그리며

오늘도 마른 흙을 갈고 있어요. 어머니

 

 

 

 

 

    

 

 

 

 

 

 

 

 

2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