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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근처 / 박성현

by 丹野 2011. 2. 16.

 

p r a h a

 

 

 

  근처

  박성현

 

 

  나무좀 한 무리가 삼나무에 구멍을 내자 근처 나무가 모조리 말라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겨우 숨이 붙은 나무 하나가 그 구멍 속에서 다시 씨를 터트리기

까지 태반이 불학원(不學院)을 순례하는 꿈을 꾸었다

 

  적하(赤河)의 잎사귀가 흙과 돌을 고르고 떨어져 죽은 벌레들을

다지며 네 발이나 두 발 짐승의 오즘과 똥을 받아 바르게 폈다는 것

으로

 

  그것은 평생 한 사람의 몸뚱이를 이고 다녔던 두 발목의 이야기

이며

 

  또한 다리와 다리가 부딪치며 갈라지는 몸의 틈 즉, 내 사지가 얽

혀 있는 차가운 속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래 나무좀이 갉아놓은 구멍이란 놈은 참으로 소란스러운 것이

어서 멱살을 잡아 매치거나 종아리를 걷어차거나 하며 먼저 자리를

튼 구멍을 밀어내는데

 

  그리하여 구멍은 또 하나의 천지간이다

 

  입하와 망종, 처서를 지나는 동안 한바탕 굵은 소나기가 내렸고

물의 굴곡에서 죽은 나무가 산 나무의 뿌리를 감싸 안은 순간

 

  가만, 나는 불학원 근처를 돌며 삼나무 구멍마다 흰 연꽃을 생각

했던 것이다 

 

 

-『젊은시』 문학나무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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