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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겨울 추위에 무너앉은 겨울 동백 꽃들을 위하여

by 丹野 2011. 1. 24.

[나무를 찾아서] 겨울 추위에 무너앉은 겨울 동백 꽃들을 위하여

몇 십 년 만이었다는 지난 며칠간의 추위를 견뎌내느라 지친 듯 고개 숙인 해운대 동백섬의 동백 꽃

   [2011. 1. 24]

   이틀 동안 머무른 부산의 날씨는 중부권의 영하 16도의 추위를 견뎌야 했던 나그네에게 포근한 편이었습니다. 외투를 벗고 거닐어도 추운 줄 몰랐습니다. 조금 차갑다고 느낄 정도였지요. 하지만 부산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게는 몇 십 년 만의 추위가 버거웠던 모양입니다. 모두가 한껏 움츠러들었습니다. 해운대 동백섬의 동백이 그랬습니다.

   해마다 이 즈음이면 예쁘게 피어나는 동백섬의 동백에게도 이 겨울의 추위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빨갛게 피어있을 동백을 찾아 동백섬으로 나섰습니다. 동백이 만개하기에는 좀 이르지 싶었지만, 동백 꽃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설??습니다. 올해 처음 만나는 동백 꽃이니까요. 어김없이 동백 꽃은 피었습니다. 겨울엔 부산 동백섬에 가야 할 이유는 그래서입니다.

   추위를 채 견뎌내지 못하고 피자마자 곧바로 얼어붙어 생을 마친 동백 꽃

   그러나 얄궂게도 이미 빨간 꽃잎을 활짝 열었던 꽃송이들이 얼어붙어 볼품을 잃었습니다. 붉은 빛을 잃고 바짝 말랐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의 바람을 견디기 힘들었던 게죠. 원래 동백은 이렇게 후즐근하게 자기 앞의 생을 마치지 않습니다. 전혀 시들지 않고 화려함을 잃지 않은 채 그 붉은 꽃을 통째로 후드득 떨어뜨리는 도도한 꽃이 동백 꽃이지요.

   그래서 동백 꽃이 시드는 모습을 보고 숨을 멎게 할 만큼 환상적인 낙화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동백 꽃들이 처참하게 시들어 버린 겁니다. 애면글면 아직 붉은 빛을 잃지 않은 꽃송이들도 지난 며칠 동안의 추위가 힘에 겨웠던 모양입니다. 오동통하게 피어있어야 할 꽃은 몇 송이 없고, 추위에 손이 곱아드는 것처럼 꽃잎이 죄다 쭈글쭈글 오므라들었습니다.

   화려함을 잃고 치욕의 삶을 짊어진 채 수줍게 잎새 뒤에 몸을 숨긴 동백 꽃

   꽃송이 안쪽에 노랗게 피어있어야 할 꽃술도 그랬습니다. 추위에 얼어 노란 빛을 잃고 허옇게 말라붙었어요. 아침 바람 맞으며 동백 섬을 두루 걸었지만, 새빨간 꽃잎과 어우러진 노란 꽃술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빨간 색과 노란 색의 채도를 모두 잃고 동백 꽃으로서는 차마 드러내기 싫었을 창박한 모습으로 스스로가 안타까워 하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한 동백 꽃잎에 든 깊은 피멍이 안쓰럽게 다가옵니다. 그나마 햇살 좋은 곳으로 뻗어낸 가지에 매달린 몇 송이의 동백 꽃은 아직 붉은 빛을 남기고 다시 솟아오를 따뜻한 햇살을 기다립니다. 물론 아직 꽃잎을 열지 않고 오동통하게 살찌운 꽃봉오리만 잔뜩 매달고 있는 나무들이 더 많긴 합니다. 아직 이 숲의 동백들을 다시 찾아볼 이유는 충분히 남아있습니다.

   아직은 붉은 빛을 잃지 않고 새로 솟아오를 햇살을 기다리는 동백 꽃

   중부권에 보금자리를 튼 동백들은 3월, 혹은 4월이나 되어야 꽃을 피웁니다. 선운사 동백꽃은 4월 되어야 피어나니까요. 그래서 동백을 겨울 꽃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생경합니다. 하지만 동백은 분명히 겨울에 꽃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겨울 추위가 깊을수록 붉은 빛이 더 깊어지는 그런 꽃이지요. 이야기하다 보니, 제주도 동백 동산의 동백 꽃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네요.

   또 궁금한 동백은 동백이 아름답게 피어나기로 유명한 여수 향일암 부근의 동백입니다. 이 곳의 동백 꽃을 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그러나 부산 지역에서는 언제나 1월이면 동백 꽃이 다문다문 피어나기 시작해서 3월까지 계속 피어나지요. 그리고 3월 쯤 되면 예쁘게 피어난 동백 꽃이 화려한 가운데, 그 숲에는 시들지 않은 채 후드득 떨어진 동백의 낙화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햇살 받으면 짙은 붉은 빛으로 겨울을 화려하게 수놓을 롱백 꽃

   고작해야 하루 지났건만 해운대 동백섬의 동백 꽃의 안부가 걱정됩니다. 하긴 하룻만에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미 시든 꽃 때문에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동백들에게 아직은 수줍음에 몸을 움츠리기엔 이르다고 일러주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겨울 바람 오락가락해도 시간 지나면 따뜻한 햇살 솟아오를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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