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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코헨 Mark Cohen( 1943 ~ )
마크 코헨(Mark Cohen)의 사진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그의 사진이 명백한 의미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해서 실망하지 말자. 우리는 그저 그의 사진이 제공하는 상상의 유희를 얼마나 자극하는지를 즐기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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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어떤 일관성 있는 문맥 속에 사진을 배치하고 작가의 의도를 명백히 하려 한다. 그러나 코헨의 사진을 보면 이런 사진의 모호한 의미적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시각화 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그 사진이 찍혀진 때와 장소 그리고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의 사진 속에 우리가 이미 어떠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가 구사하는 파편적인 화면 구성은 분명한 ‘의미’를 읽어내는데 상당한 방해적 요소로 작용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파인더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찍은 듯한 혹은 실수로 셔터버튼을 누른 듯한 사진들은 사진에 원초적으로 달라붙어 있는 사실( 한때 존재 했었던 )조차 어쩔 수 없이 흐려진다. 다만 그것은 그저 찍혀져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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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는 일은 매우 자명한 일인 듯 보인다. 단 사진을 보면서 하나하나 찍은 사람의 의도를 읽어내고, 이를 통해서 정보나, 지식을 투명하게 흡수하는 행위로 이해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또 이 과정에서 작가에 의해서 전달되는 단일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 또한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흔히 사진이라는 것을 해석을 거치지 않고 존재하는 실체, 다시 말해서 고정적이고 완전한 의미를 ‘이미’ 부여받은 상태에서 사진속의 대상을 현실로 보고 있다. |
여행을 가서 관광 명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행위는 여행목적 그 자체가 되었다. 누군가 여행을 다녀온 후 한 장의 사진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는 여행에 대한 완전한 충족감에 사로잡힐 수 없을 것이다. 증거로 제시될 사진이 없음으로서 여행을 다녀온 사실이 소멸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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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찍혀지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진가도 이 암묵적 합의와 공모 속에서 사진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진에 들어난 사실들은, 그러니까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욕망의 반영체이다. 사진에 선택되어진 ‘사실’ 대게의 경우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사진가의 시선과 대상과의 시선이 만나는 공모관계가 잘 들어나지 않는다. 결국 사진에 찍혀진 사실은 감추고, 들어내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배제하고, 선택된 인위적이고 조작된 허구의 사실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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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찍혀진 객관적 현실을 보고 있다는 우리의 상식이 이처럼, 사실은 환상에 불과 하다. 우리는 다만 사진에 찍혀져 있는 대상을 넘어 비워 둔 공간, 즉 여백에서 자유롭게 욕망하고, 유희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사진이 통일된 실체가 아님은 자명해진 듯 하다. 이제 사진이 수많은 의미로 구성되어 있다는 그래서 문맥에 따라서 사진의 의미는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쉽게 이해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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