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나호열
힘을 주면 부러지기 쉽고
너무 힘을 빼면
영영 쓰러져 버린다
광막한 도회지의 한복판에서
다만 흔들리고 있을 뿐인
늪 속에 발목을 묻은
사람들이여!
갈대에도 꽃이 핀다
나호열
흔들리라 하시면 흔들리겠습니다
허리 굽히라 하시면 고개 숙이겠습니다
말없이 지나가는 강물
하얀 서리 머리에 얹고
그냥 기다리라 하시면 이 자리에
이 자리에 앞길 훤히 밝히는
등불이 되겠습니다
모두들 갈대라고 나를 부르면
나는 온몸으로 대답하겠습니다
들리지 않는 강물 소리로
꽃 피우겠습니다
갈대
나호열
마음을 비우라 하셨지만
그냥 버리 수는 없었습니다
귀하고 아까웠던 것
다 잃어버린 이후에
정녕 곡식 거두어들인 빈 들에
새롭게 돋아오르는
이름없는 하루살이 풀꽃이
나의 몸인 줄 알겠습니다
집인 줄 알겠습니다